새로운 ‘모순’(矛盾) 전쟁의 서막-김영식 조선대 IT융합대학 정보통신공학부 교수
2022년 01월 24일(월) 05:00
2019년 구글에서 기존 컴퓨터보다 더 빠른 속도로 연산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 기술을 개발했고 그것이 심지어 현재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의 성능을 뛰어넘었다는 뉴스가 보도된 바 있다. 이를 ‘양자 우위’라고 하는 데, 현실에서 매우 빠른 보통의 컴퓨터 보다 양자컴퓨터가 훨씬 더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2020년 한 이동통신사에서 양자 암호를 적용한 스마트폰을 출시하면서 “해킹을 원천 차단한다”는 광고 문구를 사용했다. 현시점에서 실제 기술이 어떤지 하나하나 따져볼 부분이 많지만, 분명한 것은 ‘양자’를 앞세운 새로운 암호 및 보안 기술이 머지않은 미래에 광범위하게 사용될 것이란 사실이다.

암호는 한자로 어두울 ‘暗’자에 기호를 뜻 하는 ‘號’자가 결합한 단어로서 어둠 속에 숨어서 쓰는 기호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어로는 그 뜻이 더욱 분명하다. 크립토그래피(cryptography)에서 ‘crypt-’라는 접두어는 유럽에 있는 교회의 지하실을 의미하는데, 중세시대에 이 지하실은 주로 지역 영주들의 납골당, 즉 무덤으로 사용됐다. 그러니까 영어로 암호는 무덤에서 뭔가를 쓰는 것을 의미한다. 어두운 밤에 무덤에 갈 사람이 있겠는가? 담력 시험이 아니라면 평소에는 사람이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을 곳에서 몰래 비밀리에 뭔가를 하던 사람들이 만든 유산이 암호이다.

역사적으로 암호는 인류의 분쟁과 전쟁, 치열한 정치적 다툼이 있는 곳에 항상 있었다. 전쟁 잘하기로 유명한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인들은 문자의 위치를 바꾸는 암호를 사용했고, 갈리아 원정으로 7년간 싸우러 다닌 카이사르는 멀리 떨어진 로마의 정치적 수하들과 의견을 교환할 때 문자를 치환하는 암호를 사용했다. 모든 정보가 0과 1의 이진수로 처리되는 현대 암호에도 스파르타인과 카이사르가 사용한 암호의 기본 원리가 적용된다. 물론 최근에는 좀 더 다양한 형태의 암호가 사용된다. 대표적으로 ‘키’는 비밀로 해야 한다는 관념을 통째로 바꾼 ‘공개키’ 암호가 있다. 우리가 온라인으로 물건을 살 때마다 공개키 암호로 전자서명을 하고 있으며 인터넷에 접속할 때 암호화와 인증이 저절로 되는 등 암호는 실생활 곳곳에서 사람들 모르게 적용되고 있다.

또한 암호는 컴퓨터 기술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사용하던 암호화 기계인 에니그마가 만든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주인공 앨런 튜링은 “기계가 암호화한 것은 기계로 풀어야 한다”며 암호 해독을 위한 최초의 컴퓨터를 실제 제작한다. 컴퓨터가 처음 만들어진 배경에는 암호와 암호 해독 문제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994년 수학자 피터 쇼어 박사는 물리학자들의 가벼운 대화를 듣다가 놀라운 생각을 했는데, 당시 물리학자들이 이론으로 연구하던 양자컴퓨터에서만 동작하는 연산을 활용하면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RSA 암호를 쉽게 해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한 것이다.

양자컴퓨터는 당시까지 아무도 실체를 본 적 없는 가상의 컴퓨터였지만, 이때부터 양자컴퓨터를 실제로 만들기 위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암호를 깰 수 있게 되자 각 나라와 기업은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연구를 꾸준히 지원했다. 그러다가 구글에서 현존 슈퍼컴퓨터와 성능을 다툴 만한 물건을 실제로 만들어 검증까지 마쳤다고 크게 선전할 정도로까지 발전했다.

물론 양자 컴퓨터는 아직 현대 암호 해독이 가능할 정도로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 10년 이내에 현재 우리가 널리 사용하는 공개키 암호는 더는 쓸 수 없을 것으로 보인 다. 그러면 이제 온라인 쇼핑은 못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다행히 양자컴퓨터 공격에 내성을 가진 ‘양자 내성 암호’가 개발되고 있다. 다시 끝없는 창과 방패(矛盾) 싸움의 새로운 막이 열리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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