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걷고 싶은 도시로 다함께 걸어야
2022년 01월 19일(수) 04:00
걷고 싶은 도시 만들려면
보행자 마음 먼저 살펴야
걷는 도시 출발은 약자 배려
일상공간에 녹아있어야 의미

서울 가로수길. 자동차 중심의 상업가로를 보행자우선도로로 조성한 계획안으로 자동차 통행을 허용하면서도 대부분의 길에서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도록 했다. (출처: 보행자를 위한 설계)

# 걷는 사람의 마음이 먼저다

서울 가로수길. 자동차 중심의 상업가로를 보행자우선도로로 조성한 계획안으로 자동차 통행을 허용하면서도 대부분의 길에서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도록 했다. (출처: 보행자를 위한 설계)
우리 주변의 보행환경을 개선하는 도시 정부의 정책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로 불편하고 위험한 보행환경을 고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왔으며, 어느 정도 개선이 이루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보행환경을 착실하게 개선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시설공사를 하기 이전에 도시안팎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형편을 우선 살펴보는 일이 중요하다.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걷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도로에서 기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들이 이루어져왔지만,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배려가 없다. 보도나 과속방지턱 같은 물리적 시설을 몇 미터, 몇 건 정도 일률적으로 설치하는 일은 나름대로 의미는 있지만, 실질적인 보행환경을 충실하게 개선하기에는 부족하다.

광주시 보도. 좁은 보도에 세워진 이륜차는 걷는 이들에게 불편을 준다. 보도에서조차 보행권이 침해되는 일이 일상화되고 있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각양각색이다. 자동차나 자전거도 물론 다양하기는 하지만 여행객들이 아니라면 목적지로 최대한 빠르게 이동하고자 하는 유사한 목적을 가지고 있고, 바퀴가 달린 물리적 조건이 같다보니 움직이는 방식도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는 달리 걸어가는 사람들은 각자 다른 목적과 여건을 가지고 있어 간단하게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특징이 있다. 출근길의 직장인들은 목적지로 달려가기 바쁘지만 그들 또한 점심시간의 여유를 위해서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대화를 하면서 천천히 걷고자 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피곤한 몸으로 전화기만 보며 힘겹게 발을 옮길 것이다.

같은 사람이라도 때때로 걷는 이유와 모습이 다름은 물론이고 우리 삶에서는 혈기왕성한 소년들, 나이드신 어르신들, 무거운 짐을 든 사람들,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이들, 전동휠체어나 유아차를 미는 이들이 보도나 길가를 함께 나눠 쓰고 있다. 길에는 걸어가는 이들도 있지만 이따금 멈추어 서서 버스를 기다리거나 이웃과 인사를 나누고 가게 앞을 서성이면서 흥미로운 물건을 구경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 모든 모습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서로 다른 의도와 여건으로 빚어진 길 위의 모습이 다양한 것은 걷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만큼 다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길은 사람들이 이동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바로 사람들이 머무르고자 하는 공간 자체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정규화되고 흐름으로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는 이동수단이 아니라, 각자의 다양한 사정과 한계를 가지고 가로공간을 부유하거나 점유하는 주체라는 점이 고려돼야 한다.

# 매일 걷는 이들의 마음으로

이제는 구식이 되어버린 존 롤즈의 ‘정의론’을 구태여 들먹이지 않더라도, 다양한 이들 가운데 가장 약한 이들을 배려하는 것이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드는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약하다는 의미는 별다른 대안이 없는 이들이다. 어린이들은 누군가 데려다주지 않는다면 학교 가는 길은 정해져 있다. 유아차에 아기를 태우고 밀며 길을 걷기 위해서는 혼자 다닐 때에 비해 몸과 마음이 힘들기 마련이다. 무거운 책가방이나 짐을 이고 다녀야 하는 이들의 어려움이나 큰 여행가방을 끌며 낯선 길을 찾아 헤메는 이들 또한 그 순간에는 약한 사람들이 되어 버린다.

길을 어쩌다 한두번 걸어보는 것만으로는 약한 이들의 수고로움을 알기 어렵다. 매일 그 길로 일을 나서고, 학교에 가야하고, 장을 보고, 아이를 데려다 주어야 하는 사람들의 처지에서는 목적지에 가기 위해 매번 마음의 짜증과 몸의 피곤함을 견뎌야하는 것이다.

우리의 길을 어떻게 사용할까, 누가 우선적으로 사용하도록 허락할까, 누구를 위하여 만들고 운영할까하는 공적인 의사결정은 매우 과학적인 판단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누구의 처지를 먼저 생각할까하는 판단에서 기인한다.

광주시 보도. 좁은 보도에 세워진 이륜차는 걷는 이들에게 불편을 준다. 보도에서조차 보행권이 침해되는 일이 일상화되고 있다.
걷고 싶은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아름답게 꾸며진 공원의 산책로를 떠올리거나 가로수가 울창한 도심의 식당가를 연상하기 쉽다. 하지만 걷고 싶은 길은 어쩌다 체험용 테마파크처럼 찾아가서 체험하는 곳이라기보다는 매일 일하고, 놀고, 잠자는 일상 속 공간에 밀접하게 녹아있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매일 이용하는 길이라는 점이다. 하루 하루 고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길이라면 단 50m, 3분을 더 돌아가거나 더 기다리는 일도 부담이 된다. 자동차가 끊이지 않는 보도 없는 길을 아이 손을 잡고 걸어가거나 보도가 좁고 울퉁불퉁해 유아차를 밀고 가기에 힘든 길을 매일 가야하는 이들의 마음에는 그늘이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은 공간들의 문제가 일상이 될 때, 우리의 삶의 질은 떨어지기 마련이며 보행환경 문제는 생명과 장소를 해치는 주범으로 우리 앞에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낸다.

도로 끝까지 횡단보도가 없어 위험을 감수하고 많은 보행자들이 무단 횡단을 하고 있다. 무단횡단하는 보행자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몇백m가 지나도록 횡단보도가 없다면 보행자의 심리도 이해할 수 있다.
사는 곳에 대한 이미지는 실내보다 언제나 마주하는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상점, 경치, 탈 것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 길을 걸을 때 마음이 불편하고 위험을 느끼는 곳이라면 사는 곳에 대한 애정과 관심 대신 형편만 좋아지면 이곳을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만 커질 것이다. 제인 제이콥스는 “누구나 기회만 되면 벗어나고자 하는 동네가 바로 슬럼”이라고 정의했다. 매일 길을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지역의 주인이며 이들의 마음을 찬찬히 보살피는 길이 필요하다.

# 걷고 양보하고 함께하고

누구나 걷고 싶기는 하지만, 우리가 사는 도시 안팎의 대부분은 걷기에 불편하다. 특히 자동차가 잘 달리는 데 우선 순위를 두고 만들어진 많은 길들은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때론 위험에 빠트린다.

안전한 보행환경의 기준은 집이나 직장 앞에서 어린이들과 장애인들이 횡단보도를 혼자 건너도록 해도 아무런 마음의 부담이 없는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내 가족이 혼자 길을 건너도록 하는 게 꺼림칙하다면 좋은 보행환경과는 거리가 멀다고 판단해도 무방하다. 또 볼일을 보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걸어가는 길이 너무 힘들고 멀리 돌아가야 한다면 이 역시 편리한 보행환경이라고 볼 수 없다. 위험하고 불편한 길은 걸어가려 했던 사람들이 다시 자동차를 이용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만든다.

걷는 이들이 겪는 위험과 어려움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기존에 누리던 운전자들의 속도와 편리함을 조금은 양보해야 한다. 자동차들이 이전처럼 다니면서도 걷기 좋은 도시가 되는 방법은 없다. 자동차는 걸어다니는 이들이 함께하는 곳에서는 더 느리게 다니고, 더 조심해서 다니며, 더 멀리 돌아가야 한다. 자동차를 위해 아낌없이 할애하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나눠줘야 한다.

도시의 도로는 이전 시대의 의사결정으로 조성된 것이어서 예전처럼 속도를 내려는 많은 운전자들의 오해와 불만을 초래하기도 한다. 따라서 나누어 쓰는 행동을 고려한 새로운 길의 물리적 조건과 운영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보행자 우선 도로와 도로 다이어트의 확대, 차량소통 중심의 교차로 개선, 횡단보도의 설계 개선, 어린이보호구역 등의 전면적인 개편이 포함된다.

자동차를 이용하는 생활은 더 많은 비용이 든다. 이런 부담은 불필요한 지출이 없는 ‘적정비용의 도시’ 구현에 역행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아기나 어린이를 보살피고 함께 다니는 데 바람직한 보행환경이 마련되지 않은 곳에 사는 이들은 결국 승용차 수요층이 되고, 안전하고 편리한 이동을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한다. 이는 그만큼 삶의 다른 부분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앗아가는 셈이다.

또 승용차의 과도한 이용은 사람들이 살면서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발생시킨다는 의미도 된다. 더 적은 온실가스, 더 적은 에너지를 기반으로 소외계층이나 소외지역의 이동여건을 악화시키지 않고, 이동의 효율성을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 보행자 교통사고 사상자가 계속 발생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면 도시의 보행환경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대중교통이 함께 강조돼야한다. 이는 2020년 국제 도로안전에 관한 장관급 회의에서 발표된 ‘스톡홀름 선언’에도 담겨있는 내용이다.

걷고 싶은 도시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는 다양한 거주자 집단의 서로 다른 보행여건과 보행수요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정책이 갖기 쉬운 시설 중심의 관성을 과감히 탈피해야하며 도시를 이용하는 최종적인 행태적 유형이 바로 보행활동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승용차가 고려의 중심이 되는 곳에서는 걷기가 힘들고, 걷기 힘든 도시에서는 다시 승용차를 이용하는 이들이 늘게된다. 이 과정에서 승용차를 이용하지 못하는 이들을 도시공간의 사각지대에 몰아넣어 위험하고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

안전하고 편리하며 매력적인 도시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걷는 것이 즐거운 길들이 이곳 저 곳에 가득해야 한다. 이는 그 도시에서 걷는 이들을 위해 승용차의 양보가 얼마나 이루어질 것인가에 달려 있다.

오성훈

건축공간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보행환경연구센터장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전문위원

대한도시설계학회 보행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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