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빚-박용수 광주동신고 교사·수필가
2021년 12월 28일(화) 05:00 가가
연말은 빚쟁이도 함께 온다. 그것도 여럿이 한껏 몸을 부풀려 온다. 가뜩이나 추운 때에 청구서를 들고 온 불청객 앞에서 깊은 한숨만 나온다. 카드 빚이나 외상 빚을 연기하거나 어떻게 갚았다고 할지라도 빚이 없는 게 아니다. 우린 살면서 알게 모르게 빚을 지고 산다. 숫자로 박힌 빚 못지않게 ‘보이지 않는 빚’도 적지 않다. 연말은 그 빚을 찾아낼 때, 동시에 갚거나 탕감해야 할 때이기도 하다.
누구와 다투다 불리하면 제일 먼저 형에게 달려가 도움을 요청했고, 급전이 필요하면 누나에게 전화부터 했다. 친구가 사준 막걸리 몇 사발로 외로움을 달래기도 했다. 이웃의 응원과 직장 선후배가 베풀어준 사랑의 빚 또한 너무 커서 금전으로 환산할 수조차 없다. 모두 보이지 않는 빚이다.
나도 이곳에서 30여 년을 훌쩍 넘게 근무했다. 간혹 빨리 물러나서 새로운 도전을 해야겠다는 말은 실은 너스레를 넘어 무례한 생각이다. 좋은 일터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해 준 사람들 모두에게 무한히 감사할 일이다.
이런 것들은 그나마 조금 눈을 돌리면 볼 수 있는 빚이다. 하지만 진짜 빚은 꼭꼭 숨어 있어서 바위를 들치고 가재를 잡듯 꼼꼼히 살펴야 한다. 부모님께 받은 사랑의 중량은 들 수도 잴 수도 없으려니와 당신께서 받을 생각조차 안 하여서 애초 빚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아내의 손길도 작고 섬세하게 구석구석에 박혀 있다. 힘내라고, 잘했다는 아내의 격려나 전화 한 통화가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던가. 너무 당연해서 지나쳐 버린 것들, 따지고 보면 가장 값진 너무 빛나서 보이지도 않는 빚이다.
몇 해 전, 제자들 초청을 받아 서울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이었다. 늦게 도착한 한 녀석이 고속버스 안까지 헐레벌떡 뛰어왔다. 잠깐 보고 버스가 떠나는 바람에 창밖을 보니 녀석이 오랫동안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내려오는 도중에 녀석이 건네준 작은 상자를 열었다. 양주 한 병과 봉투가 들어 있었다. “선생님, 20년 전 제가 상경할 때, 주신 돈 이제야 갚습니다. 그 돈이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강산이 두 번 바뀌었는데, 가뭇했다. 아마 여비 정도를 호주머니에 넣어준 것 같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일인데 녀석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았고, 그 결과 지금처럼 중소기업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면 참 다행한 일이다. 뜻밖의 과분한 선물을 받고 한없이 기분이 좋았다. 성공은 그냥 얻거나 쥐여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성공하기까지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공통분모가 있다. 노력과 용기 그리고 이면에 숨어 있는 감사하는 마음이다. 어쩜 작은 것도 소중하게 여기는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그를 성공으로 안내했을 것 같다.
‘하느님은 병들게 하거나 어려운 일로 고통을 주지 않고 그 사람에게서 감사하는 마음을 뺏어 버림으로써 벌을 준다’라는 무치무라 간조의 말이 가슴에 다가온다. 이제 오히려 내 스승이 되어 있는 그에게 이번엔 내가 빚을 진 셈이다.
빚은 유효 기간이 있다. 나중에 부자가 되어 갚으려고 해도 상대가 없거나 유용할 때 돌려주지 않은 빚은 의미가 절감된다. 풍수지탄은 빚 갚기를 소홀히 하지 말라는 은유이다.
아침 공기, 나무 그늘, 가을 단풍에도 빚이 있고, 과일과 곡식을 맺는 나무에도 빚을 지고 살아간다. 땅을 파헤친 지렁이나 두더지에게도 빚이 있고, 밤새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 또한 빚이리라. 내 폐지를 가져가 주는 할머니에게도, 아침이면 택배 상자를 전해주는 아저씨에게도 빚이 있다. 새벽바람을 뚫고 고기잡이 나가는 이름 모를 어부에게도 빚이 있고, 봄에 뿌릴 씨앗을 고르는 산골 할아버지에게도 빚이 있다. 우린 모두 이렇게 멀리 떨어져 각자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핏줄처럼 하나하나 연결되어 있고, 그들의 사랑으로 살아간다.
우리는 부모 형제나 가족, 이웃의 관심과 도움으로 그나마 또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어디 자기 노력만으로 되는 세상이던가. 그러니 이 또한 갚아야 할 채무이련만 잊고 있지는 않은지, 빚 걱정보다 혹시 마음의 빚을 잊고 살지 않는지, 올 연말은 그 빚을 찾아보고, 그 사랑을 어떻게 되돌려 줄 것인지부터 고민할 일이다.
나도 이곳에서 30여 년을 훌쩍 넘게 근무했다. 간혹 빨리 물러나서 새로운 도전을 해야겠다는 말은 실은 너스레를 넘어 무례한 생각이다. 좋은 일터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해 준 사람들 모두에게 무한히 감사할 일이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일인데 녀석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았고, 그 결과 지금처럼 중소기업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면 참 다행한 일이다. 뜻밖의 과분한 선물을 받고 한없이 기분이 좋았다. 성공은 그냥 얻거나 쥐여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성공하기까지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공통분모가 있다. 노력과 용기 그리고 이면에 숨어 있는 감사하는 마음이다. 어쩜 작은 것도 소중하게 여기는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그를 성공으로 안내했을 것 같다.
‘하느님은 병들게 하거나 어려운 일로 고통을 주지 않고 그 사람에게서 감사하는 마음을 뺏어 버림으로써 벌을 준다’라는 무치무라 간조의 말이 가슴에 다가온다. 이제 오히려 내 스승이 되어 있는 그에게 이번엔 내가 빚을 진 셈이다.
빚은 유효 기간이 있다. 나중에 부자가 되어 갚으려고 해도 상대가 없거나 유용할 때 돌려주지 않은 빚은 의미가 절감된다. 풍수지탄은 빚 갚기를 소홀히 하지 말라는 은유이다.
아침 공기, 나무 그늘, 가을 단풍에도 빚이 있고, 과일과 곡식을 맺는 나무에도 빚을 지고 살아간다. 땅을 파헤친 지렁이나 두더지에게도 빚이 있고, 밤새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 또한 빚이리라. 내 폐지를 가져가 주는 할머니에게도, 아침이면 택배 상자를 전해주는 아저씨에게도 빚이 있다. 새벽바람을 뚫고 고기잡이 나가는 이름 모를 어부에게도 빚이 있고, 봄에 뿌릴 씨앗을 고르는 산골 할아버지에게도 빚이 있다. 우린 모두 이렇게 멀리 떨어져 각자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핏줄처럼 하나하나 연결되어 있고, 그들의 사랑으로 살아간다.
우리는 부모 형제나 가족, 이웃의 관심과 도움으로 그나마 또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어디 자기 노력만으로 되는 세상이던가. 그러니 이 또한 갚아야 할 채무이련만 잊고 있지는 않은지, 빚 걱정보다 혹시 마음의 빚을 잊고 살지 않는지, 올 연말은 그 빚을 찾아보고, 그 사랑을 어떻게 되돌려 줄 것인지부터 고민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