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칼과 오합혜(五合鞋)
2021년 12월 13일(월) 04:00 가가
잠깐 길을 잃었는지 호기심 때문인지, 교실로 벌이 들어왔다. 깜짝 놀란 아이들은 고함을 치며 화생방 훈련이라도 하듯 머리를 감싸고 달아나거나 책상 밑으로 숨느라 호들갑을 떤다. 그러다가 벌이 나가고 나방이나 나비 따위가 들어오면 이번엔 자기가 잡겠다고 빗자루나 공책을 들고 야단법석 설친다. 아주 가끔 참새나 까치가 들어오면 옆 교실 친구들까지 가세해서 복도까지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때마침 과제를 못 했거나 무료했던 차에 일이 생겼으니 호기심은 오히려 녀석들이 더 작동하였고 신까지 난 셈이다. 어쩌면 녀석들보다 새나 벌레들이 더 놀랐을 것이다. 이런 일을 몇 차례 겪은 녀석들은 벌레나 곤충이 들어오면 아예 입구부터 차단하고 신나게 놀아난다.
녀석들 시선이 벌레를 쫓는 사이, 난 슬며시 반대쪽 창문을 열어 놓고 어서 달아나라고 응원한다. 벌레를 가지고 노는 일이 못마땅하기도 하고, 녀석들 손에 잡혀 온전히 살아 나간 모습을 본 적이 없어 불편한 심기가 앞선 탓이다.
간혹 독재를 피해서 다른 나라로 피신 가는 고단한 행렬이 아리게 떠오른다. 독재자들은 종족이나 문화,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동족을 혐오하고 도륙한다. 벌레를 벌레로 보지 못하고 무섭거나 징그럽게 여기는 어린아이처럼, 공존할 방법이 많은데도 굳이 차이점을 내세워 증오하고 배척부터 한다.
우리 역사를 보면 우리 백성들도 벌레처럼 이리저리 쫓겨 다니며 살았다. 말이 피난이지 쫓기고 또 쫓겨 산속으로 해외로 애면글면 삶을 도모해야 했던 아픈 역사다. 오랑캐와 왜구들의 침략을 받을 때마다 수많은 백성이 도망치다 귀가 잘리고 목이 떨어지는 등 참혹하게 희생을 당했다. 해방 후에는 이념을 앞세워 우리끼리 총구를 내밀고 동족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념은 바로 상대에게 속지 말라고 경고하는 그 행위를 통해 우리를 속인다더니, 대저 이념이 무엇이기에 죄없이 죽은 무덤 앞에서 이토록 뼈에 저리도록 아픈가. 대부분 이념은 자기에게는 좋은 색깔을, 상대에게는 벌레 같은 색깔을 덧칠해서 폭력을 행사한다. 조금만 열면 우주를 품고도 남을 마음이건만 그것을 좁히면 바람 한 점 들어갈 구멍이 없게 만드는 것이 이념이 아니던가.
4·3과 여순이 그랬고 80년 광주가 그랬다. 아무 죄 없는 사람들에게 갖은 색깔을 씌워 벌레나 곤충처럼 무지막지하게 학살했다.
그럴 때마다 상부상조하고 여민동락했던 옛 조상들의 빛난 지혜가 그리워진다. 나보다 먼저 너를 앞세우고 늘 함께 하는 자세, 인간을 넘어 동물은 물론 벌레까지 존중한 정신 말이다.
장자는 호접지몽이나 남곽자기 이야기를 통해 자아와 외물은 본디 하나라고 역설하곤 했다. 우리가 편견 없는 시각으로 대상을 보면 그 대상으로 인해 나의 존재가 성립하고, 나로 인해 그 대상 또한 존재의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몽골의 타아가 지대에 사는 차탕족은 순록을 말처럼 애지중지한다. 순록이 늙어 숨이 다할 때는 쇠붙이가 아닌 나무칼로 급소를 찔러 고통을 줄여 준다. 우리 어머니들도 뜨거운 물은 곧바로 버리지 않고 충분히 식었을 때 수채통에 버렸다. 개미나 지렁이 미생물뿐 아니라 식물의 뿌리까지 상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옛 선비들은 먼 길을 떠날 때면 짚신을 한 보따리씩 싸서 다녔다. 짚신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촘촘하게 삼은 십합혜(十合鞋)는 오래가고 실용적이지만 산길에 접어들면 벌레들을 위해 씨줄 다섯 가닥만으로 헐겁게 삼은 오합혜(五合鞋)를 신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땅속 미생물까지 헤아릴 줄 알았던 선조들의 마음의 눈,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켰던 마음은 시대를 초월해서, 특히 근자에 더욱 되새김질해야 할 고귀한 가치다.
한바탕의 소란도 끝났다. 운이 좋게 벌은 내가 열어 놓은 창문으로 무사히 탈출했다. 녀석들은 누가 문을 열어 놓았느냐며 탄성을 지른다.
벌레나 곤충도 존재 이유가 있다. 그를 알려거든 그 사람 신발을 신고 1주일은 걸어 다녀 보아야 한다는 인디언들의 이야기를 깊이 생각해 본다. 나무칼과 오합혜, 우리 조상들이 상대를 배려하고 낮은 자세로 길을 걷고 겸손하게 살고자 했던 모습, 그 정신이 깊이 가슴을 울린다.
이념은 바로 상대에게 속지 말라고 경고하는 그 행위를 통해 우리를 속인다더니, 대저 이념이 무엇이기에 죄없이 죽은 무덤 앞에서 이토록 뼈에 저리도록 아픈가. 대부분 이념은 자기에게는 좋은 색깔을, 상대에게는 벌레 같은 색깔을 덧칠해서 폭력을 행사한다. 조금만 열면 우주를 품고도 남을 마음이건만 그것을 좁히면 바람 한 점 들어갈 구멍이 없게 만드는 것이 이념이 아니던가.
4·3과 여순이 그랬고 80년 광주가 그랬다. 아무 죄 없는 사람들에게 갖은 색깔을 씌워 벌레나 곤충처럼 무지막지하게 학살했다.
그럴 때마다 상부상조하고 여민동락했던 옛 조상들의 빛난 지혜가 그리워진다. 나보다 먼저 너를 앞세우고 늘 함께 하는 자세, 인간을 넘어 동물은 물론 벌레까지 존중한 정신 말이다.
장자는 호접지몽이나 남곽자기 이야기를 통해 자아와 외물은 본디 하나라고 역설하곤 했다. 우리가 편견 없는 시각으로 대상을 보면 그 대상으로 인해 나의 존재가 성립하고, 나로 인해 그 대상 또한 존재의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몽골의 타아가 지대에 사는 차탕족은 순록을 말처럼 애지중지한다. 순록이 늙어 숨이 다할 때는 쇠붙이가 아닌 나무칼로 급소를 찔러 고통을 줄여 준다. 우리 어머니들도 뜨거운 물은 곧바로 버리지 않고 충분히 식었을 때 수채통에 버렸다. 개미나 지렁이 미생물뿐 아니라 식물의 뿌리까지 상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옛 선비들은 먼 길을 떠날 때면 짚신을 한 보따리씩 싸서 다녔다. 짚신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촘촘하게 삼은 십합혜(十合鞋)는 오래가고 실용적이지만 산길에 접어들면 벌레들을 위해 씨줄 다섯 가닥만으로 헐겁게 삼은 오합혜(五合鞋)를 신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땅속 미생물까지 헤아릴 줄 알았던 선조들의 마음의 눈,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켰던 마음은 시대를 초월해서, 특히 근자에 더욱 되새김질해야 할 고귀한 가치다.
한바탕의 소란도 끝났다. 운이 좋게 벌은 내가 열어 놓은 창문으로 무사히 탈출했다. 녀석들은 누가 문을 열어 놓았느냐며 탄성을 지른다.
벌레나 곤충도 존재 이유가 있다. 그를 알려거든 그 사람 신발을 신고 1주일은 걸어 다녀 보아야 한다는 인디언들의 이야기를 깊이 생각해 본다. 나무칼과 오합혜, 우리 조상들이 상대를 배려하고 낮은 자세로 길을 걷고 겸손하게 살고자 했던 모습, 그 정신이 깊이 가슴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