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이 죽었다고?-김요수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대외협력총괄단 위원
2021년 12월 02일(목) 02:00
1926년 매국의 아이콘 이완용이 죽었다.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이다. 오적은 다섯 명인데 우리는 이완용만 알고, 이지용, 박제순, 이근택, 권중현은 잘 모른다. 을사오적은 나라를 팔았을 때 나라를 살리는 길(구국)이라고 말했다. 사사오입으로 독재의 길을 열어도 나라를 살리는 길,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도 나라를 살리는 길! 그래서 그런가, 정치를 시작할 때나 정치 방향을 바꿀 때 ‘구국’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이완용은 을사늑약을 한 뒤로 일본 왕에게 작위와 상금을 받으면서 떵떵거리며 살았고, 그의 후손들도 떵떵거리며 산다. 나라를 팔아먹었거나 일본제국주의를 도왔던(부역) 사람들이 언론사를 차지하거나 출판사를 만들었다. 학교를 세우거나 가로채기도 했다. 책이라는 기록으로 남기니 역사 왜곡하기 좋았고, 학교에 동상을 세우니 신분 세탁하기에 좋았으리라. 역사 왜곡과 신분 세탁은 언론에서 주야장천(晝夜長川) 떠들어 세뇌시킨다.

이렇게 매국노와 독재자, 그들의 부역자와 후손들이 떵떵거리며 잘~사는 발판을 마련했다. 사립학교는 국가 지원을 받는데 마치 자기 돈처럼 쓰니까 사학 비리가 생긴다. 지식인을 빌려 매국노와 독재자를 ‘구국’으로 미화하고 포장한 책을 내니까 역사 왜곡이 자리를 잡는다. 이들에게 매수된 언론인들이 앵무새처럼 떠드니까 역사 왜곡을 역사로 보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완용이 죽었다고 나라를 판 죄가 없어지지 않는다.

학살의 아이콘 전두환이 죽었다. 전두환은 1980년 총칼로 광주를 짓밟아 정권을 탈취했다. 전두환과 전두환에게 은총(?)을 입은 사람들은, 그때 까닭 없이 죽은 사람과 가족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는다. 전두환은 죽는 날까지 자신이 저지른 학살과 독재에 대해 용서를 빈 적도 없이 떵떵거리며 살았고, 그에게 충성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정치를 잘했다’고 칭송한다.

외국 언론은 전두환을 독재자, 학살자라고 쓰고 말하는데, 한국 언론은 전직 대통령이라 한다. 1980년 5월에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이 있고, 40년이 넘도록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는데, ‘발포 명령’을 하지 않았고 ‘헬기 사격’은 없었다고 우긴다. 그것을 책으로 써서 ‘역사’로 포장하고 ‘구국’으로 미화한다. 포장과 미화는 언론과 언론 역할을 하는 유튜버들이 확신하고 퍼뜨린다.

유럽에는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찬양하면 처벌하는 법이 있다. 역사 왜곡 방지법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학살과 독재를 혐오하지만, 역사 왜곡 방지법은 없다. 대한민국 국민은 독립운동을 자랑스러워하며, 민주 운동을 존경한다. 독재자를 독재자라 부르고, 학살자를 학살자라 부르는 일 또한 국가 존엄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다. 전두환이 죽었다고 학살의 역사까지 죽은 것은 아니다.

전두환이 죽은 날, 이광영이 죽었다. 이광영은 장갑차를 앞세워 권력을 탐하던 전두환에 맞섰다. 그는 80년 5월 총에 맞은 뒤 휠체어에 기댄 채 살았다. 이광영은 5·18광장에서 5월의 진실을 말하면서, 고통을 참다가 말을 잇지 못했고 고통을 참다가 눈물로 말했다. 단지 울분이란 말로 이광영의 고통을 대변할 수 없고, 우리의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다.

이광영은 40년 넘도록 ‘고통스럽다’고 말했고,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광영은 정의로 광주를 지켰고, 고통으로 민주를 지켰다. 이광영이 죽었다고 광주의 고통이 죽지 않았고, 민주의 불꽃까지 죽은 것은 아니다.

나라를 팔아먹은 놈, 독재를 했던 놈, 매국과 독재와 학살에 부역한 놈, 그들의 후손들, 그리고 매국과 독재와 학살을 미화하고 포장하는 놈들이 부끄러움을 알아야 역사 왜곡을 입에 올리지 못하는 사회가 되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완성된다. 대한민국 국민은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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