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독식의 ‘시험 공화국’-송민석 수필가·전 여천고 교장
2021년 10월 06일(수) 05:30
칭기즈칸은 이런 말을 했다. “길이 없으면 새 길을 만들라”고. 굳이 이 말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성을 쌓는 자는 길을 내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역사를 살펴보면 성을 쌓는 자는 결국 망하고 말았다.

사람은 성을 쌓고 싶은 욕망이 있다. 성안에 머무르는 자들은 성 밖의 사람들과 구별되고 싶어 하고 성 밖의 ‘다름’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고 싶어 한다. 주변을 살펴보면 ‘과거의 벽돌’로 단단하게 뭉쳐진 학벌이라는 성이 있다. 10대 후반에 치렀던 시험 결과로 평생을 규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착화한 비합리적인 사회의 모습인가.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패거리 문화를 조장하고 있는 학연은 곧 학맥을 형성한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큰 벼슬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의 출신 학교가 어디인가부터 따진다. 그리하여 학교가 같으면 과거에는 서로 잘 알지 못했던 사이라도 금방 선배-후배, 형님-동생으로 이어져 사적인 연결망이 형성된다. 소위 줄 대기의 시작이다.

이런 것을 보면서 스포츠 경기에서 패자부활전을 생각하게 된다. 주로 단판 승부 형식의 토너먼트 대회에서 사용되는 방식이 패자부활전이다. 진정한 성공을 위한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다. 참가자들이 한 번의 성공이나 실패에 자만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게 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패자부활전이 성공적으로 정착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철저한 ‘실력 중심’의 평가 시스템이다. 여기서는 나이, 성별, 소속 단체, 출신 학교 등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경기장 안에서 실력으로만 대결하면 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선진국보다 패자에 대한 배려가 턱없이 부족하다. 공정 사회가 되려면 역경을 딛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패자부활전이 보장되어야 하는 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학생에게 패자부활전이 필요하다. 나아가 이러한 기회가 대학 졸업 후 취업과 승진에서까지 공정하게 보장될 때 정의로운 사회가 실현될 것이다.

교육은 그간 세대 간 계층 이동의 통로 역할을 해왔다. 패자부활이 가능한 가교 역할이었다. 그러나 점차 ‘돈으로 성적 쌓기’와 같은 파행적인 교육 현실은 계층 상승의 유일한 수단인 교육 기회조차 박탈하면서 교육 불평등 문제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상위 계층이 자신의 기득권을 수호하는 수단으로 교육이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입학생이 수도권 특정 지역에 편중되어 있음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렇듯 부의 대물림이 학력의 대물림을 낳고, 학력의 대물림이 다시 부의 대물림을 가져오면서 ‘개천의 용’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른바 명문대 합격생의 학부모가 대부분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로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따라서 젊은이들이 ‘헬조선’이라 느끼는 큰 원인 중 하나가 이러한 상대적 박탈감이 아닌가 한다.

금수저나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은 본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다. 그렇기에 패자부활전에서 강한 의지와 노력으로 자신을 금수저나 은수저로 만들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다. 실패한 경험이 있더라도 쉬지 않고 노력하면 계층 이동이 가능한 부활의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가 진정한 경쟁 사회라는 말이다.

신자유주의 경쟁 논리를 앞세운 무한 경쟁 속에 사교육 시장이 날로 커지면서 시험 하나로 인생이 결정되는 ‘승자독식’의 세상이 된 지 오래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나이의 많고 적음에 차별받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키우면서 패자와 승자가 끊임없이 경쟁하는 체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한 번의 실패도 용납되지 않는 ‘시험 공화국’이란 소모적 경쟁은 하루빨리 종식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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