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맞이한다는 것은-김창균 광주예술고 교감
2021년 09월 08일(수) 00:30
그리 사납던 한여름 기세도 계절의 변화는 이길 수 없는 모양이다. 입추와 처서를 거쳐 가을을 알리는 절기인 백로도 지났다. 예로부터 백로에는 제비가 돌아가고 기러기가 날아온다고 했으니, 개울가 바람에 나부끼는 물억새 이삭에도 가을 내음이 물씬하다.

조만간 산 위에서부터 단풍이 내리면 사람들은 그 화려함을 좇아 분주히 산에 오를 것이다. 밟히는 낙엽의 부스럭거리는 소리 속에서 천지에 흐드러진 붉은 그리움의 자취와 더불어 뒤안길로 돌아서는 흔적을 배웅하는 시간을 얻을 것이다. 온몸을 곱게 단장한 단풍과 길가에 나뒹구는 낙엽이 같음을 보면서 세상을 돌아보는 겸허의 지혜와 함께할 것이다. 동전의 양면마냥 화려함 뒤에 남는 애잔함은 가을에서 얻는 깨우침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 일각에는 여전히 막말이 문제 되는 경우가 있다. 자극적인 용어를 통해 본인의 인지도를 높이거나 지지자를 결집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부적절한 용어로 인한 설화(舌禍)로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거나 언론의 지탄을 받는 경우를 간혹 보게 된다. 반대자의 비판과 지지자의 응원은 댓글의 형태로서 더욱 폭력적으로 증폭되기도 한다.

똑같은 상황을 놓고서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사뭇 달라진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처럼, 말 자체가 존재의 거처이면서 말하는 이의 실체를 드러내게 된다. 나아가 ‘구시화복문’(口是禍福門) 즉 말로 인해 화(禍)를 자초하거나, 말로써 복(福)을 부르기도 한다.

요즘처럼 인터넷과 SNS가 발달한 시대에 괜히 어설픈 정보를 가지고 입을 놀리다가는 금방 구설에 오르기 마련이니, 옛 시조 중에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까 하노라’라는 구절처럼 입을 닫음으로써 말로 인한 분란을 회피하는 것도 지혜일 것이다. 하지만 자기주장 없이 시류에 편승하거나 회피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처럼 제값 하는 말하기는 바람직한 세상을 이끄는 중요한 일이다.

몇 해 전 베트남 축구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베트남 국민으로부터 사랑받을 때 박항서 감독은 언론에서 “저를 사랑해 주시는 만큼, 내 조국 대한민국도 사랑해 달라”고 말했다. 당시 한국과 베트남 국민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데에 이 말보다도 좋은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말의 힘이 바른 역할을 하는 세상이야말로 우리가 살 만한 사회일 것이다.

그런 뜻에서 작가 이기주는 ‘말의 품격’이란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품격이 드러난다. 나만의 체취, 내가 지닌 고유한 인향(人香)은 내가 구사하는 말에서 뿜어 나온다. 말을 의미하는 한자 언(言)에는 묘한 뜻이 숨어있다. 두 번(二) 생각한 다음 천천히 입(口)을 열어야 비로소 말(言)이 된다. 사람에게 품격이 있듯 말에도 나름의 품격이 있으며 그게 바로 언품(言品)이다.”

가을은 익은 곡식을 거둬들여야 하니 수성(守成)의 계절이라고도 했다. 내가 한 말이 내놓은 만큼 돌아옴을 상기하여 ‘심심창해수(心深滄海水) 구중곤륜산(口重崑崙山)’이라는 말을 가슴에 담았으면 좋겠다. ‘마음 씀씀이는 넓고 깊은 바닷물처럼 깊어야 하고, 입은 곤륜산(중국 전설상의 높은 산)처럼 무거워야 한다’는 뜻이니, 막말이 주는 업보를 되받지 않도록 늘 말조심할 일이다.

소생(蘇生)과 성장, 결실에 이은 영락(零落)의 순환이 자연의 섭리이듯이,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음을 아는 것이야말로 가을을 맞는 지혜가 아닌가 싶다. 유난스러웠던 무더위와 잦은 비를 보내고 맞이하는 이번 가을이기에 한광일의 동시 ‘생각하는 나무’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나뭇잎은 어쩌면 / 나무들의 / 생각인지도 몰라 // 봄 / 뾰족뾰족 / 돋는 생각 // 여름 / 푸릇푸릇 / 펼쳐낸 생각 // 가을 / 알록달록 / 재미난 생각 // ‘이게 아닌데’ / ‘이게 아닌데’ // 온갖 생각 / 다 떨쳐버리고 // 다시 생각에 잠기는 /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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