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2040
2021년 08월 23일(월) 00:30
멍에와 명예의 간극에 서 있는 광주

정준호 위민연구원 이사·변호사

2021년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여름이 시작되던 지난 6월 끔찍한 참사가 광주 한복판에서 일어났다. 후진국형 재해라고 했다. 불법 철거와 하도급 단가 후려치기, 지분 쪼개기, 조합장 선출 과정에서의 문제와 정관계 로비 그리고 조폭 문제까지 현대 사회의 부조리에 관한 종합 사례라고 해도 좋을 단어들이 한꺼번에 뉴스를 장식했다.

타 지역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노출 된 뉴스는 5·18 3단체 중 한 곳의 회장이 이와 관련하여 해외로 도주했다는 것이었다. 뉴스에 달린 댓글들은 이 곳에 언급하기조차 어려운 내용들이 많았다. 해당 단체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얼마 전 한 공중파의 생방송 토론에서는 사과 발표 이후 어떠한 실질적인 자정 노력이 있었는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이 확인되지 않았다. 상대 패널은 애초에 기대를 하면 안된다는 취지의 주장도 했다.

경찰의 중간 수사 결과가 발표되었지만 그야말로 무기력과 허탈함 그 자체였다. 수사의 진척을 위해서는 핵심 관계자의 귀국만을 마냥 바라고 있었고, 지분 쪼개기는 실질적인 처벌 규정이 없어서 공백만을 확인했단다. 이목이 집중된 이른바 딱지 분양권을 매개로 한 정관계 로비는 리스트가 소문으로 돌고 있음에도 공식적인 확인조차 없었다.

사고 발생 후 두 달을 훌쩍 넘긴 지금쯤이면 얽히고설킨 지역의 이권 관계를 부분적으로나마 확인하면서 재개발 사업을 지렛대로 지역의 토호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세력과 이를 묵인하고 있는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있으리라 예상했다. 전국의 이목이 집중된 만큼 타 지역의 시민들의 예상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실상은 너무도 무기력한 수사 결과 발표, 도피한 해외 인사와 유력 대권주자의 사진만이 네거티브 정쟁의 도구로만 활용되고 있다. 그 사이에서 확인되는 2021년의 광주의 모습은 사람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해 버린 5·18과 조폭 도시라는 오명, 그리고 상대의 흠집내기 재료를 찾는 지역으로서의 광주라는 참담한 현실뿐이다.

어느 지역보다도 목소리가 큰 재야나 시민단체들도 특별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제보를 기다린다는 진보 정당의 현수막이 거리에 내걸렸지만 과거 고 노회찬 의원의 삼성장학생 명단 폭로와 같은 풍경은 나오지 않고 있다.

보기에 부끄러운 이번 사건 뉴스에 달린 댓글들을 관통하는 한 가지 정서가 있다. 광주는 명예로운 도시라는 수사(修辭)가 어쩌면 그동안 강요되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광주 내부에서는 광주의 명예를 이야기하지만 외부에서는 광주가 짊어지고 있는 멍에를 더 크게 바라보는 것 아닐까.

“5월은 명예가 아니고 멍에이며, 채권도 이권도 아니고 채무이고, 희생이고 봉사입니다. 5월은 광주의 것도, 구속자·부상자·유가족의 것도 아니고 조국의 것이고 전체 시민과 민족의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후략)”

5·18기념재단의 창립 선언문이다. 냉정히 광주의 명예는 현재 오염되어 있다. 학동 참사와 같은 비극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제대로 작금의 명예와 멍에의 간극을 해소하자는 이야기가 없는 현실이 슬프다. 시장 팥죽집의 자식은 버스 안에서 꽃다운 나이에 죽음을 당하고 수사 대상자는 해외로 도피하고 로비를 받은 공무원들은 소문에만 그친다. 2021년 광주 여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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