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이 실력입니다-최영태 전 전남대 인문대학장
2021년 06월 23일(수) 02:00
‘감성’이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성공과 행복은 IQ(지능지수)보다 EQ(감성지능)가 좌우한다’ ‘감성을 자극하라’ ‘감정을 파고드는 감성 마케팅’ 등의 문장이 넘쳐 난다.

감성을 사전에서는 어떤 일이나 현상, 사물에 대하여 느낌이 일어나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당연히 느끼고, 상상하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은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자산이다. 예를 들어 감성이 높은 사람은 주어진 과제를 긍정적, 심미적으로 잘 처리한다. 감성 지능이 높은 학생일수록 학교생활 적응과 수업 적응의 향상성도 높다. 감성 능력은 학교 폭력이나 왕따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어른의 세계에서도 감성은 중요하다. 대니얼 골먼(Daniel Goleman)은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는 한 가지 결정적인 점에서 닮았다. 이들은 모두 대단히 높은 감성 지능을 기록한다”고 말했다.

현대 뇌 과학 역시 인간의 정신 능력에서 감성의 역할이 중요함을 말해 준다. 특히 적응 능력, 충동 억제, 대처 능력은 감성 지능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고 한다. 감성은 창의성 등 인지 능력을 개발하는 것과도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이 때문에 감성 지능과 감성 역량은 심리학계뿐만 아니라 가정, 교육, 사회, 기업 등 모든 분야에서 점점 중요시되고 있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모든 배움은 감성을 기반으로 한다고 했다. 초·중등학교에서 감성을 키우는 대표적인 교과목으로 문학·음악·미술 과목이 있다. 그런데 이런 교과목은 이성 개발 즉 인지 능력 개발을 통한 인재 양성이라는 목표에 밀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입시 중심 교육도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들었다.

예술에 기술을 접목하였던 작가 백남준은 이미 1960년대에 기술의 빠른 유입과 변화로 삶의 불안과 고통을 받을 사회에 대해 예견하고, 이에 대한 극복 방안으로서 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경제학자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은 예술의 역할은 “미래를 상상하고 혁신을 이룰 수 있도록 인지적·감성적 도구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당장 정규 교과과정에서 예술 과목의 비중을 높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비교과 영역에서 감성을 증진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필자는 광주교육에서 10여 년 전 폐지된 ‘1학생 1악기제’의 부활을 주장한 바 있다. 원하는 학생들에게 악기 하나씩을 다루도록 제도적·재정적 뒷받침을 해 주자는 것이다. 학교에 음악감상실, 합창단, 관현악단이 만들어지고, 수시로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 학교를 상상해 본다.

미술 교육은 학교 안의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외국 여행 때 미술관, 박물관을 다니면서 흔하게 접하는 풍경 중 하나는 초·중등학교 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바닥에 앉아 그림과 사진을 설명하는 장면이다. 필자는 문화전당(어린이문화원)을 제2의 교실로 활용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어린이 시설인 문화전당이 학생들에게 상상력과 창의성의 보고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미술관, 박물관, 과학관 등을 찾는, 교실 밖 체험 학습을 강화하면 좋겠다. 물론 전제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체험 학습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학생들의 안전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필자가 다녔던 시골 초등학교는 수십 년 전에 폐교됐다. 그럼에도 내 머릿속에는 지금도 초등학교 꽃밭에 심어졌던 장미, 개나리, 국화, 앵두나무 등의 모습이 저장되어 있다. 그것은 내 마음속의 가장 아름다운 꽃밭이다. 지금의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삭막한 도시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에게 학교 꽃밭은 정서 함양과 미적 감성을 키우는 데 좋은 환경이 될 것이다.

인성 교육과 실력은 별개가 될 수 없다. 학생들의 감성과 예술적 소양을 키우는 것이 곧 인성 교육이다. 실력이라는 개념도 유연하게 해석하자. 국·영·수 등 일반 교과를 잘 하는 것, 예체능에 소질이 있는 것, 리더십이 좋은 것, 사람을 잘 사귀는 것 등 모두가 실력이다. 당연히 감성 능력 또한 소중한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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