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하청에 ‘시민안전실’은 있으나 마나
2021년 06월 15일(화) 02:00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학동 재개발구역 붕괴 건물의 철거를 맡은 업체가 사실상 ‘1인 건설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청업체가 공사 경험과 기술력,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또 다른 업체에게 수주 실적의 열 배가 넘는 공사를 불법으로 재하도급하면서 대형 참사가 빚어진 것이다.

광주경찰청에 따르면 학동 4구역 주택재개발조합은 현대산업개발과 구역 내 610개 동의 건축물 철거 계약을 체결했고, 현대산업개발은 (주)한솔기업에 철거 업무를 모두 넘겼다. 한데 서울 소재 업체인 한솔기업은 또다시 지역 업체인 (주)백솔건설에 철거 공사를 불법으로 재하도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더 큰 문제는 경찰 조사 결과 백솔건설이 사실상 1인 건설사로 밝혀지고 있는 점이다. 참사 당일인 지난 9일에는 이 업체 대표가 직접 굴착기를 몰아 건물 철거를 했고, 다른 직원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일용직 건설노동자였다. 일이 있을 때마다 일용직을 활용해 공사를 진행한 것이다. 더욱이 백솔건설이 지난해 수주한 사업은 단 두 건, 6900여만 원에 불과했다. 이처럼 열악한 업체가 10억 원이 넘는 규모의 철거 공사를 수주하면서 그 배경에 의혹이 쏠리고 있다.

더욱이 백솔건설은 석면 해체 면허가 없는 상태에서 ‘철거왕’으로 불리는 이금렬 씨가 운영하는 다원그룹 소속의 다원이앤씨로부터 일부 석면 철거 공사까지 넘겨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다단계 하청으로 인해 최종 하도급 업체는 수주 금액이 크게 줄어 안전에 대한 투자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들 업체 간의 불법 계약 행위와 행정기관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졌는지에 대한 집중 수사가 필요한 이유다.

이번 참사와 관련 광주시가 ‘시민 안전 도시’를 내세우며 운영 중인 ‘시민안전실’의 무사안일 행정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두 달 전에도 계림동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붕괴돼 두 명이나 목숨을 잃었지만 이렇다 할 후속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광주시는 시민안전실 조직부터 대대적으로 재정비해 더 이상의 안전사고를 막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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