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희 동신대 기초교양대학 교수] 삶이라는 문제, 역사에서 찾은 답
2021년 05월 24일(월) 08:00 가가
최근 교양 수업 시간에 ‘지금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에 대해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학생들은 현재 자신이 하고 싶은 일로 여행, 아르바이트, 인싸템(인사이더 아이템) 사기 등을 꼽았는데, 한 학생이 문득 “코인 사기”라고 대답하였다. 비트코인이 가상화폐의 한 종류에 불과함을 알지 못했었던 나는 “비트코인?”하고 되물음으로써 가상화폐에 대한 나의 무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그 학생은 그냥 “네 뭐…” 하며 교수의 무식함을 담담한 묵인으로 받아 주었다. 순간 나의 되물음이 잘못됐음을 직감했지만 예상과 다른 새로운 대답에 “그렇구나, 요즘, 비트코인이 뜨고 있지?” 하며 공감도 질문도 아닌 애매모호한 답변을 하였다. 그 학생의 대답이 오래도록 내 뇌리에 남아 있었는데, 그것은 학생의 대답이 신선했기 때문도 아니고 요즘 뜨고 있는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 때문도 아니었다.
근래 들어 연일 보도되고 있는 가상화폐에 대한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은, 정부의 가상화폐 규제 발표에 전문가들이 우려 섞인 목소리로 가세하여 갑론을박하며 관심이 더욱 쏠리고 있다. 특히 가상화폐 시장에 20대와 30대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소식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집 하나 소유할 수 없다는 젊은 세대의 불안감 때문이 아닌지 염려하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젊은 세대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까? 젊은 세대들은 이미 물려줄 것이 별로 남지 않은 기성세대가 전하는 조언을 듣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선생이라는 직업 정신을 발휘하여 물어올 때를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러한 물음의 대답을 역사 속 인물들의 삶 속에서 찾고 싶다. 살아가는 내내 불확실한 미래에 선택과 결정을 내렸을 과거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자신의 삶의 길을 결정할 수 있고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도 예측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인물의 반열에 든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만의 중심을 가지고 삶을 살아냈다는 점이다. 조선시대 황희 정승처럼 검소하게 자신의 삶을 살다간 이원익 선생의 삶이 그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한다. 이원익 선생은 스물두 살에 과거에 급제해서 명종, 선조, 광해군, 인조 네 임금 밑에서 무려 여섯 차례나 영의정을 지냈던 인물이다. 그런데도 이원익은 오두막에서 일반 백성들과 다름없이 살았다고 한다. 이익에 휘둘리지 않았으며 백성들을 위해 대동법을 제안했고 모함에 빠진 이순신을 구명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생활은 가난했고 끼니를 걱정하였으며 중인들이 하는 일을 했음에도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었다고 한다.
또 순천에 가면 팔마체육관, 팔마초등학교, 팔마종합운동장, 팔마야구장 등 ‘팔마’로 시작하는 시설들이 많다. 순천 사람들이 지명뿐 아니라 많은 시설물 및 영업점에도 팔마라는 이름을 붙여 부른 것을 보면, 이 지역 사람들의 가슴에 팔마의 역사가 얼마나 자긍심으로 남아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팔마는 고려시대 순천에서 일한 최석이라는 사또가 임기가 끝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때 전별금으로 순천 사람들이 마련해 준(마련해 주어야 했던) 여덟 필의 말을 그동안 어미 말이 난 새끼 말을 포함하여 아홉 마리로 돌려주었는데, 이에 감동한 순천 사람들이 최석 공덕비(팔마비)를 세운 데서 유래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이 팔마비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며 순천은 청렴의 도시로 불렸고, 당시 많은 사람들이 최석을 존경했고 대단한 인물로 여기고 따라 배우자고 외쳤다고 한다. 최석이라고 왜 욕심이 없었겠는가. 당시만 해도 말 한 필이 지금의 자동차 한 대 값이었다고 하니 그 가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말 여덟 필은 지금의 20~30대 젊은이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비트코인 여덟 개의 값에 해당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긴 인물 중에는 자기 중심을 잡고 살기 위해 노력하며 떳떳한 삶을 살아낸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결정에 자긍심을 가지고 떳떳한 삶을 살기 위해 자신만의 길을 걸어 나간다. 다른 사람들로 인해 쉽게 흔들리지 않고 내 존재를 긍정하고 내가 하는 일에 자긍심을 가진다. 이러한 자긍심은 물질이 만들어 낸 자긍심과 달리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또한 어떤 혼란이나 불확실성에도 상처받지 않고 흔들리지 않을 힘이며,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힘이라고 생각된다.
또 순천에 가면 팔마체육관, 팔마초등학교, 팔마종합운동장, 팔마야구장 등 ‘팔마’로 시작하는 시설들이 많다. 순천 사람들이 지명뿐 아니라 많은 시설물 및 영업점에도 팔마라는 이름을 붙여 부른 것을 보면, 이 지역 사람들의 가슴에 팔마의 역사가 얼마나 자긍심으로 남아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팔마는 고려시대 순천에서 일한 최석이라는 사또가 임기가 끝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때 전별금으로 순천 사람들이 마련해 준(마련해 주어야 했던) 여덟 필의 말을 그동안 어미 말이 난 새끼 말을 포함하여 아홉 마리로 돌려주었는데, 이에 감동한 순천 사람들이 최석 공덕비(팔마비)를 세운 데서 유래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이 팔마비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며 순천은 청렴의 도시로 불렸고, 당시 많은 사람들이 최석을 존경했고 대단한 인물로 여기고 따라 배우자고 외쳤다고 한다. 최석이라고 왜 욕심이 없었겠는가. 당시만 해도 말 한 필이 지금의 자동차 한 대 값이었다고 하니 그 가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말 여덟 필은 지금의 20~30대 젊은이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비트코인 여덟 개의 값에 해당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긴 인물 중에는 자기 중심을 잡고 살기 위해 노력하며 떳떳한 삶을 살아낸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결정에 자긍심을 가지고 떳떳한 삶을 살기 위해 자신만의 길을 걸어 나간다. 다른 사람들로 인해 쉽게 흔들리지 않고 내 존재를 긍정하고 내가 하는 일에 자긍심을 가진다. 이러한 자긍심은 물질이 만들어 낸 자긍심과 달리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또한 어떤 혼란이나 불확실성에도 상처받지 않고 흔들리지 않을 힘이며,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힘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