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석 시인] 5·18과 여수의 광주시민 돕기 운동
2021년 05월 19일(수) 03:00
어느덧 사십 년이 흘렀다. 1980년에 나는 여수시청 사회과 복지계에서 말단 공무원으로 이웃돕기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5월 18일 ‘광주 소요 사태’(당시 신군부의 용어)를 맞았다. 여수에서는 풍문만 무성할 뿐 광주의 사정을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 나흘 뒤인 22일 오후 대학생 두 명이 사회과를 찾아왔다. 옷과 신발은 흙으로 더럽혀져 있었고 얼굴과 손은 가시에 긁힌 듯 상처투성이였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광주에서 무장군인들을 피해 산길을 타고 밤낮을 걸어왔다며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들로부터 광주의 상황을 대충 들을 수 있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당시 사회과에는 사정이 긴박한 사람(부랑인 등)들을 위해 귀가 교통비와 하루 식대 정도를 지원해 주는 긴급 구호 예산이 있어 3만 원을 지급했다. 다음날 또 대학생 한 명이 찾아왔다. 그에게서 좀 더 자세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많은 시민이 군인들의 총칼에 쓰러져 죽고 시내가 아비규환의 현장임을 말해 주었다.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문득 광주시민돕기 운동을 전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웃돕기 업무 담당자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기안을 했다. 제목은 ‘광주시민돕기 운동 전개’였고 본문은 “지난 5월 18일부터 일어난 불의의 사태로 인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시민을 돕기 위해 긴급 광주시민돕기 운동을 전개하오니 많은 시민 여러분의 참여와 협조를 부탁드립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먼저 복지계장에게 결재를 올렸다. 복지계장은 한참을 보더니 의미 있는 미소를 지으며 사인을 해 주었다. 사회과장은 타 시군과 보조를 맞추는 게 좋겠다며 사인을 했다. 그리고 부시장을 거쳐 시장실로 갔다. 당시 시장은 한병용 씨였다. 나는 광주의 사정을 대학생들에게 들은 대로 이야기하고 광주시민듭기 운동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시장님은 대뜸 “자네 학교는 어디 나왔는가? 이름이 뭐지?” 하며 나의 신상을 물어본 뒤 고개를 끄덕이며 격려와 함께 결재를 해 주셨다. 그러면서 사태가 끝나고 행정이 정상화되면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역시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5월 27일 사태가 끝나고 행정이 정상화되자 5월 말 공문을 시행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여기저기서 문의 전화가 오고 성금이 답지했다. 불과 20여 일 만에 580여 만 원의 성금이 모였다. 나는 성금을 여수 MBC에 전달했다. 민영방송인 MBC가 좀 더 안전할 것 같아서였다.

7월 초였다. 아침에 출근하니 청내가 뒤숭숭했다. 시장 이하 주요 간부 공무원들이 모두 밤중에 군 보안대로 잡혀갔다는 것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시장은 광주 상무대로 이송되고 부시장 이하 간부 공무원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전신에 피멍이 들도록 고문을 당한 뒤 풀려났다. 당시 얘기론 전남 27개 시군 중에서 유독 여수시만 그런 날벼락을 맞았다고 했다. 간부 공무원들은 왜 여수시가 군부의 비위를 거슬러 그런 곤욕을 당했는지 실과별로 잘못한 업무가 있는지 점검해 보라는 말도 했다.

나는 뜨끔했다. 혹시 내가 기안한 광주시민돕기 운동이 빌미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여수시에서 시작된 광주시민돕기 운동은 뜨거운 호응을 얻어 시군으로 전파되고 결국 범도민 운동으로 확산되었기에 군부의 입장에선 처음 불을 지핀 여수시가 기분 나쁜 대상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스스로 부정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내내 짐이 되었다. 그 뒤 전남도청으로 전입한 나는 그때 모금된 성금이 당시 전남도 차원(광주시는 보통시였음)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광주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어린이대공원을 조성하는 데 쓰였다는 것을 알았다. 일견 뿌듯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스스로 억누르고 살아왔지만 해마다 5·18이 되면 그때 생각이 되살아나 이제야 묵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그것은 80년 당시 여수시청을 짓밟은 군부의 가혹한 폭력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으며 만약 다른 이유가 아닌 광주시민돕기 운동이 원인이었다면, 이로 인해 해직까지 당한 시장과 며칠씩 고문을 당한 간부 공직자들에 대하여 이제라도 적절한 신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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