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기 전남대 5·18연구소장] 5·18정신으로 ‘87년 체제’를 넘어서자
2021년 05월 18일(화) 03:07 가가
엘리엇(T. S. Eliot)은 제1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정신적 혼미와 황폐를 표현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썼다. 하지만 많은 한국인들은 4월보다는 5월을 잔인한 달로 받아들인다. 5·18이라는 숫자로 상징되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때 5·18은 국가 폭력과 그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며, 동시에 그 사건이 갖는 역사적 가치인 5·18정신을 말하는 것이다.
1990년대에 정리된 5·18정신은 민주, 인권, 평화이다. 이러한 가치들은 주로 18일부터 21일 사이에 벌어진 항쟁에 근거한다. 하지만 나는 25일의 항쟁 지도부 구성과 27일 새벽의 마지막 저항 역시 5·18정신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5월 22일부터 25일 사이 광주에서는 시민들 사이에서 격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사태의 평화적인 해결과 무기 회수를 주장했다. 수습위원회로 대변되는 이들 역시 공수부대의 폭력에 분노하고 있었고 정의감도 있었지만, 군과의 대결은 희생자만 양산할 뿐이라는 현실적인 계산을 하고 있었다.
반면에 궐기대회에서 표출된 시민들의 요구는 공수부대가 자행한 폭력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 처벌, 보다 민주적인 정치 체제로의 이행이었다. 이들 역시 계엄군의 무력이 두려웠지만, 그동안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을 헛되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25일 결성된 항쟁 지도부는 당시 광주시민들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보다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요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진압 작전에 맞서 도청이나 YWCA에서 항전했던 수백 명의 선택도 그동안의 희생과 투쟁을 헛되게 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사망했지만, 그날의 항전으로 인해 5·18은 1980년대 5월 운동으로 이어졌으며, 결국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 오늘날의 ‘87년 체제’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필자는 현실에 맞서서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려는 시민들의 실천적인 행동이 5·18정신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시점에서 5·18정신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현재의 ‘87년 체제’를 넘어설 수 있는 정신적 유산이 5·18정신이기 때문이다. ‘87년 체제’는 당시 신군부 반란 세력과 민주당 사이의 타협의 결과였으며, 그만큼 한계를 안고 있었다. 물론 ‘87년 체제’가 이룬 독재국가에서 정상 국가로의 전환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지역주의에 기반한 정당 체제, 강고한 진영 논리와 권력의 집중, 사회·경제적 민주화 프로그램의 부재 등 다양한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
또한 ‘87년 체제’를 지탱하는 헌법은 만들어진지 30년이 지나다 보니 그간의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지속 가능한 사회, 실질적인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통일에 대비하는 열린 체계 등에서 ‘87년 체제’는 취약함을 노정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형성된 위기는 그 한계를 더욱 크게 느끼게 한다.
오늘날 5·18정신에 근거한 헌법 개정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작년에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헌법 전문에 ‘5·18민주화운동’을 새기는 것은 5·18을 훼손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역사로 자리매김하는 일”이라며 “언젠가 개헌이 이뤄지면 그 뜻을 살려 가기를 희망한다”고 하였다. 이제 우리는 보다 분명하게 ‘포스트 87년 체제’를 이야기해야 하며, 그 출발점으로 5·18정신을 주장해야 한다. 지금, 여기에서 5·18정신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모두가 숙고해야 할 질문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5·18정신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현재의 ‘87년 체제’를 넘어설 수 있는 정신적 유산이 5·18정신이기 때문이다. ‘87년 체제’는 당시 신군부 반란 세력과 민주당 사이의 타협의 결과였으며, 그만큼 한계를 안고 있었다. 물론 ‘87년 체제’가 이룬 독재국가에서 정상 국가로의 전환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지역주의에 기반한 정당 체제, 강고한 진영 논리와 권력의 집중, 사회·경제적 민주화 프로그램의 부재 등 다양한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
또한 ‘87년 체제’를 지탱하는 헌법은 만들어진지 30년이 지나다 보니 그간의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지속 가능한 사회, 실질적인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통일에 대비하는 열린 체계 등에서 ‘87년 체제’는 취약함을 노정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형성된 위기는 그 한계를 더욱 크게 느끼게 한다.
오늘날 5·18정신에 근거한 헌법 개정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작년에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헌법 전문에 ‘5·18민주화운동’을 새기는 것은 5·18을 훼손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역사로 자리매김하는 일”이라며 “언젠가 개헌이 이뤄지면 그 뜻을 살려 가기를 희망한다”고 하였다. 이제 우리는 보다 분명하게 ‘포스트 87년 체제’를 이야기해야 하며, 그 출발점으로 5·18정신을 주장해야 한다. 지금, 여기에서 5·18정신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모두가 숙고해야 할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