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석 수필가] 정말로 어린이를 사랑하는가
2021년 05월 13일(목) 23:20
어린이날은 미래 사회의 담당자인 어린이를 축복하고 그들이 올바르고 건강하며 행복하게 자라도록 염원하는 취지에서 제정된 국가 기념일이다. 그 유래는 3·1 독립운동 이후 소파 방정환 선생 등이 어린이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할 필요성을 깨닫고 1922년 5월 1일 처음 기념행사를 개최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광복 이듬해인 1946년에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하고 공휴일로 승격시켜 오늘에 이르렀다.

어린이헌장이 공포되기까지 그 바탕은 1923년 어린이운동 단체인 ‘색동회’의 창립을 손 꼽을 수 있다. 그 주역이 바로 방정환 선생이다. 색동회를 주축으로 소년회·한국동화작가협회 등 단체에 참여한 학자들과도 우리는 친숙하다. 지금의 60대 이전 세대들에겐 교과서에서 만난 강소천·방기환·김요섭·마해송·정인섭·윤석중 선생에 대한 기억이 유년 시절의 고무신 추억과 함께 아련히 떠오르곤 한다. 특히 민족주의자요 아동학자인 방정환은 어린이잡지 ‘어린이’를 창간해 소년 운동을 꾸준히 펼쳐 나갔다.

‘작은 물결’ 소파(小波) 방정환! 그는 33년의 짧은 생애를 온통 어린이와 함께했다. 항시 ‘어린이’ 책자를 통해 어린이의 희망을 노래하였으며, 색동회를 활성화시켜 어린이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는데 헌신하였다. 그는 어린이의 대부였다. 1931년 소파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큰 발자취를 따라 오늘도 어린이들은 희망을 노래하고 미래를 약속하며, 우리 사회 또한 어린이 사랑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어른들은 어린이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보호하고 있는가를 솔직히 성찰해 볼 일이다. 입양아 정인이 학대 사건은 지난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정인이란 아이를 입양한 양부모가 어느 날부터 돌변하여 반인륜적인 학대로 죽음으로 몰고 간 희대의 비극이었다. 아이는 학대의 매를 더 버티지 못하고 병상에서 숨졌다. 8개월 동안 무려 800개의 학대 장면 동영상이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 사회는 온통 탄식과 경악으로 들끓었다. 2019년 출생한 정인이는 짧기만 한 492일간의 삶 가운데 254일간을 양부모에게 희생당했다.

그 밖에도 지난해 천안 ‘가방 아동 학대’ 사건, 올 2월엔 물고문을 연상케 하는 학대로 10살 조카를 숨지게 한 이모 부부 사건, 35차례 폭행으로 아동을 사망케 한 20대 부부 사건 등이 꼬리를 물며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최근 5년간 아동 학대 사건 피해 아동만 160명에 이른다고 한다. 어린이들이 도처에서 위기에 처한 이러한 상황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누구보다도 정치권이 앞장서서 어린이 보호 특별법 제정 등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어린이 사랑을 일깨워 주는 감동적인 일화와 어록들이 있다. 브라질의 축구 영웅 펠레는 거액의 담배 광고 제의를 여러 차례 받았으나 그때마다 단호하게 거절했다. ‘나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거든요’라고. 그는 정말로 어린이를 사랑했다. 어떤 상품이든 그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만으로도 세계 곳곳의 어린이들이 호기심에 그 상품을 사리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펠레는 가난하게 자랐지만, 거액의 미끼로도 청소년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그를 유혹할 수는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어른들의 책임 있는 행동이 아니겠는가?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내 가슴은 뛰누나’에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구절이 있다. 어린이들만이 간직하고 있는 동심의 순수성을 어른들은 이미 잃어버렸고 이제는 어른들의 삶에 근원적 모범이 된다는 의미이다.

H. F. 아미엘도 “어린이의 존재는 이 땅에서 가장 빛나는 혜택이며 이들을 통해서만 천국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다”고 썼다. 아이들을 귀하게 알고 그 마음을 가치 있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없다면 세상의 삶이 얼마나 각박할지 알 수 없다. 불행히도 현실의 시계는 각박 쪽에서 머뭇거린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의 어른들은 아이들에 대한 책임과 그 순수한 가치를 망각하거나 무심히 포기해 버리지나 않았는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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