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성 서울예술단 이사장·뮤지컬 ‘광주’ 예술감독] 다시 오월, 뮤지컬 ‘광주’
2021년 05월 02일(일) 23:00
당시 나는 연극학도였다. 극단 예후 단원으로 학업과 예술의 언저리에서 바쁜 청춘을 보내고 있었다. 5월 17일로 기억한다. 단원들은 마치 소풍을 가듯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무등산 등산객을 대상으로 기금 마련 행사를 벌였다. 전단지를 나눠주거나 썬캡을 팔며 연극을 홍보했다. 주말에 등산객이 아주 많다기에 그날도 일찍 나섰다. 그러나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시위 소식이 들려왔다. 그동안 그렇게 급박한 긴장감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날은 무언가 심상치 않았다. 남은 전단지와 썬캡 등을 연출 겸 극단 대표가 근무하는 신문사 사무실에 보관하기 위해 도청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시내가 가까워 오자 최루탄의 매캐한 냄새가 났다. 도청 앞과 전일빌딩, Y다방 앞은 어제까지 보고 지나쳤던, 나름 낭만이 흐르던 거리가 아니었다. 시위대와 군인들, 그리고 시민들의 무리가 쫓고 쫓기고 있었다. 매스꺼운 최루탄 가스에 설상가상 아스팔트 교체로 인한 냄새까지 뒤엉켜 화탕(火湯)지옥 같았다. 눈물범벅 콧물 범벅 땀범벅이 된 채 토악질을 해댔다. 꿈속에서 아무리 도망가려 발버둥을 쳐도 꼼짝할 수 없는 것처럼, 발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1987년 서울예술단 단원이 되었다. 5월이면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부채 의식을 갖고 그날을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극작, 음악 구성, 안무, 출연 등 창작 가무극을 준비해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 올렸다. 그렇게 나의 방식대로 떠도는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영혼들에게 예를 갖추었다. 2013년엔 광주문화재단의 ‘제2회 세계아리랑 축전’의 일환으로 뮤지컬 ‘빛골 아리랑’을 광주에서 작업했다. 서울예술단 작품이 아닌, 광주에서 뮤지컬을 기획, 제작하는 것은 그게 처음이었다. 광주 출신으로 서울에서 일찍이 뮤지컬을 시작해 명성도 얻은지라 고향에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선배의 부름에 재깍 달려왔다.

‘빛골 아리랑’을 통해 막이 할머니의 친 아들과 입양 아들 사이에서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인연으로, 통한의 아픔을 뱉어 내는 숙명의 울부짖음을 무대에 올렸다. 5·18로 인해 무너진 한 가정사의 아픔을 통해 광주의 5월을 뮤지컬로 그려냈다. 극작 김은성, 작곡 강상구, 안무 오재익, 연출 유희성 등 메인 스탭들이 머리를 맞대고 광주 출신 배우들과 서울의 뮤지컬 배우들이 어우러진 무대는 기대 이상의 호평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보조금과 광주시 예산 감축으로 인해 더 이상 공연할 수 없게 되어 매우 아쉬웠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임을 위한 행진곡’의 대중화·세계화 작업의 일환으로 광주문화재단이 기획한 뮤지컬 ‘광주’가 지난해 홍대아트센터 무대에 올려졌다. 이어 광주 및 지방 공연에 나섰고, 올해는 LG아트센터에 공연에 이어 5월 15·16일 광주 공연을 앞두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미군 정보요원으로 근무했던 김용장 씨와 전 보안사 특명 부장 허장환 씨의 증언을 토대로 작품을 구성했다. 기존 5·18 민주항쟁을 다룬 작품들이, 그 시대 그날의 상황과 시민의 입장에서 조망했던 것과는 다르게, 부마항쟁 때도 있었다는 편의대원의 시각에서 바라본다. 항쟁의 현장에서 옛 동료와 만나고 시민들과 만나며 정신적인 혼란과 인간적인 흔들림으로 마지막에는 스스로 기꺼이 민주 항쟁에 동참하는 편의대원의 시각으로 5·18을 그렸다. 양심 고백과 증언은 울컥한 감동을 준다.

5·18 민주화운동은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서의 기록과 보존도 중요하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문화콘텐츠로 거듭 태어날 필요성이 있다. 또 ‘임을 위한 행진곡’의 대중화·세계화 작업으로서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로도 확산되어야 한다.

세계적인 뮤지컬 ‘레미제라블’ 못지않은 예향 광주의 자부심으로 우뚝 설 수 있는 대서사가 있다. 뮤지컬 ‘광주’는 시즌 2를 맞이해 더욱 정리된 모습으로 광주 관객과의 만남을 도모하고 있다. 언제까지나 계속 무대에 오르는 불멸의 명작, 뮤지컬 ‘광주’가 그렇게 되길 손꼽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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