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화 전 광주시립미술관 학예관, 문학박사] 제13회 광주비엔날레와 ‘세월오월호’
2021년 04월 30일(금) 00:00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 올해 광주비엔날레 전시 주제는 ‘인간의 삶과 죽음의 자장 안에서 건강과 치유, 체계에 관한 포괄적 문화적 존재를 한자리에 통합’하는 담론이다. 전시 감독은 5개의 전시실을 통해 삶과 죽음의 문제를 어떻게 형상화시켰을까? 자극된 호기심을 품고 비엔날레를 관람했다.

1전시장은 주제의 무거움을 감추고 시각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전시 디자이너의 배려가 읽혀진다. 특히 티켓박스를 전시장 내부 깊숙하게 배치하여 일반적인 전시 행사를 무색하게 하였다. 관심을 모으는 것은 민정기의 신작 ‘무등산, 천제단도’와 ‘무등산, 가단문학 정자도’이다. 이 두 작품은 조선 중·후기 무등산을 배경으로 형성된 가사문화권의 정자 지도와 천제단의 사원 및 샤머니즘 장소를 그린 지도 양식의 회화이다. 특히 ‘천제단도’는 전통회화 기법인 ‘부감법’으로 과거와 현재가 함께 공존하고 영적 분위기를 강조했다.

2전시장의 작품들은 상호 공동체적 소통을 위한 구성이 돋보인다. 관심 있게 본 작품은 섀넌 테 아오의 영상 작품이다. 흑백의 영상미는 사유를 요구하는 작가의 전통과 서정성에 근거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과거를 응시하며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한다.

3전시장은 천장에 걸쳐진 망사 천으로 관람 동선을 유도하고 작품과 작품을 연결시켜 마치 신비스러운 동굴을 연상하게 연출하였다. 관심은 아나 마리아 밀란의 작품으로 이동한다. 이 작품의 공간은 피곤한 관람객을 위한 휴식을 제공한다. 비디오 게임과 함께 전시장 벽면을 통유리로 리모델링하여 바깥의 공원 풍경과 소통하고 눈의 피로를 달래며 잠시 누울 수 있도록 큰 의자를 배치하였다.

4전시장은 현대인 스스로 만든 모순과 욕망, 자본주의 가속화로 얻는 고통과 비명을 통해 양산된 새로운 돌연변이들에 주목하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설치작가 티모테우스 앙가완 쿠스노의 작품에선 천장에 매달린 다양한 형태의 종이 등이 바닥을 향해 내려오고 거적에 덮인 동물 주검 앞에 까마귀가 모여들고 있다. 주검이 된 동물과 까마귀는 함께 외치며 불을 밝히고 있지만, 어둡고 무거운 기운은 감출 수가 없다.

5전시장은 여성의 지혜가 축적해 온 모계사회의 문화와 지식을 펼쳐 보인다. 그래서 전시장은 어둡고 음습한 음기를 연출시켰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전시장 안쪽에 숨겨둔 작가 릴리안 린의 작품에 관심을 갖는다. 어두운 창살 속에 수제 유리로 만들어진 대형 조각 작품은 전기로 연결돼 있고, 조명이 꺼지면 일본 가수가 속삭이는 시가 흘러나온다. 은유적인 여성 가수의 노래는 초현실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비엔날레 전시장은 무거운 철학적 전시 주제를 완성도 높고 경쾌한 구성으로 엮어 내 베니스비엔날레나 카셀 다큐멘타에도 뒤처질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몇 가지 아쉬움도 감출 수가 없다. 그중 하나는 전시장 내부에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점이다. 광주비엔날레 측에서는 누구를 위해 비엔날레를 개최하는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음성 오디오 설명 기기가 있다고는 해도, 난해한 현대미술의 설치와 영상임을 고려한다면 일반 관람객에게 보다 친절하고 섬세한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 이것이 광주비엔날레가 대중에게 다가서는 친절이며, 저변 확대를 위한 노력이다.

비엔날레를 둘러보며 필자의 비엔날레 경험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필자는 1995년 1회 창립에서 1997년 2회까지 전시부서 실무 업무와 이후 두 차례의 특별전 큐레이터를 맡아 전시를 구성하였다. 그중 2014년 제10회,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 ‘달콤한 이슬’ 공동 큐레이터는 아픈 기억이다. 다름 아닌 ‘세월오월호’ 전시이다.

당시 공직자 신분이 얼마나 자유롭지 못하고 나약하고 한계가 있었던가? 결론적으로 당시 ‘세월오월호’는 전시장에 설치했어야 했다. 큐레이터인 필자는 작가의 예술 표현 자유가 어떠한 권력 앞에서도 보호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광주이고 광주비엔날레이기에 더욱 그래야 했었다. 그러나 필자는 당시 그렇게 하지 못했기에 아직도 그 시간이 아쉽고 안타깝기만 하다.

이제 그 사건은 광주비엔날레 역사로 한국 사회와 세계 미술사에 교훈으로 남겨져 있기에, 이제는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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