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동 한국농어촌공사 전남지역본부 농지은행부장] 농지연금, 땅이 주는 든든한 평생연금
2021년 04월 26일(월) 06:00
장성에서 50년 동안 벼농사를 지어 왔던 이인철(가명) 할아버지는 올해 78번째로 맞이하는 봄이 즐겁기만 하다. 이 할아버지는 지난 정월대보름에 돼지고기 한 근 씩을 동네 어르신들에게 나눠 드렸다.

할아버지는 지난겨울 자식들의 성화에 못 이겨 농지연금에 가입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재산 1호인 문전옥답 3000여 평(9920㎡)을 담보로 잡아 돈을 받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냐고 성화를 내며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자식들이 차례로 찾아와 여생을 좀 편안히 사시라고 계속 권유를 해 오는 데다 ‘마음이 바뀌면 계약을 물러도 된다’고 해서 일단 도장을 찍었다.

1월 첫 연금이 입금됐다. 통장을 보고 또 봤다. 205만 원. 2월에도 똑같은 금액이 입금됐다. 그날 할아버지는 할멈과 같이 읍내에 나가 평생 처음 통 큰 쇼핑을 했다. 그동안 늘 마음이 쓰였던 할멈의 전동 스쿠터를 새것으로 바꿔 주고 읍내에서 유명한 음식점에서 외식도 했다. 농지연금에 가입한 뒤, 아침에 일어나 마을 앞 논을 둘러보는 것으로 하루를 여는 이인철 할아버지의 일상은 바뀌지 않았다. 농지연금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는 큰일 날 줄 알았는데 금쪽같은 문전옥답이 어디 가지 않고 그대로 있다. 지난해 가을에 뿌렸던 보리도 한창 푸르게 자라고 있다.

이번 봄부터는 농지연금에 가입한 논의 절반만 할아버지가 농사를 짓고 나머지는 마을에서 제일 어린 62살 이장에게 지으라고 내놓을 참이다. 할멈은 일주일에 두 번은 성치 않은 허리를 치료하기 위해 읍내 한의원에 다니겠다고 한다. 농사짓느라 굽은 허리가 펴질 리는 만무하지만 이제라도 좀 편히 살아야 할 것이다.

얼마 전까지는 주말에 도시에서 애들이 오면 고춧가루, 참기름, 쌀을 주곤 했지만, 매달 농지연금 월급을 받은 뒤로는 손주들이 올 때마다 십만 원씩 용돈을 주고 있다. 이번 주말에는 순천에 사는 셋째네가 온단다. 이상은 이인철 할아버지가 농지연금에 가입한 뒤 일어난 변화를 이야기로 엮어 본 것이다.

100세 시대의 도래로 늘어난 노후의 기간을 어떻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것인지가 우리 시대의 화두이다. 노후 대비 없이 늘어난 수명은 축복이 아니라 악몽이 될 것이 분명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연평균 4.4%씩 증가하고 있다. 2021년 16.5%인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20년 후인 2041년에 33.4%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는 20년 뒤 초고령화될 것이라지만 농어촌에선 이미 다가온 현실이다. 설상가상으로 2018년 기준 농업인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35.6%로 3명 중 2명은 연금소득이 없다. 국민연금에 가입한 농업인 평균 수급액도 26만 원으로 쌈짓돈에 지나지 않은 실정이다. 2019년 전남도 통계에 따르면 농가 인구의 49.1%가 65세 이상 고령이다. 이처럼 고령농 비율이 높은 농도 전남의 어르신들은 노후 대비를 어떻게 하고 있을까?

자신들의 노후 대비보다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관성처럼 무엇을 자식들에게 더 줄까를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자녀 된 우리들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 부모님의 재산 1호인 농토를 농지연금으로 유동화하여 부모님이 그간 못 누린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효도가 아닐까 한다. 평생 논에 땀을 흘렸으니 이제 그 보상을 받아도 마땅하다.

우리나라 평균 기대수명은 약 83세이나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한 유병 기간을 뺀 건강수명은 이보다 10년 이상 짧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 부모님이 농지연금으로 받는 혜택을 맘껏 누릴 수 있는 시간도 그리 많지 않은 셈이다. 자녀들이 생각을 바꾸면 우리 부모님에게도 이인철 할아버지와 같은 따뜻한 봄바람이 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효도의 개념을 바꿔서 우리 부모님이 평생을 일궈 온 농토가 우리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 드릴 수 있도록 하자. 좋은 농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지연금에 가입하지 않으면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을 것이니 그야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아닐까? 시간이 지나서 풍수지탄(風樹之嘆)에 빠지지 않도록 이제라도 우리 부모님의 농지연금 가입을 적극 권유해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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