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모 전남도 토지관리과장] 산속의 수호천사 ‘국가지점번호판’
2021년 04월 26일(월) 00:00
봄이다. 어느덧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햇볕 속 살랑이는 바람을 타고 거리 곳곳에는 온갖 꽃 내음이 한창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에 기지개를 켜고 꽃에서 나는 향기로운 내음을 음미해 보기 위해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왔다. 남악 호수 옆으로 이어지는 어진누리길을 따라 오룡산을 오른다. 228m의 낮은 산이지만 영산강이 인접해 있어서 조망이 좋다. 특히 숲도 울창하여 여느 도시 인근의 산 못지않게 제법 괜찮은 산책로다.

상용분기점을 지나 오룡산 정상에 다다르니 숨이 차오른다. 천천히 숨을 내뱉으며 남악신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을 즐기는데, 옆에 낯익은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국가지점번호판’이다. 휴대전화를 이용해 위치를 확인해 보는데 지나가던 등산객이 물어 온다. “이게 뭐다요?” 응급 상황 발생 시 사용하기 위해 현재 위치를 좌표 체계로 표시해 놓은 것이라는 다소 어설픈 설명을 들은 그 등산객은 사진 한 장을 남기더니 가던 길을 재촉하신다.

국가지점번호는 우리나라의 주소 체계가 도로명주소로 바뀌면서 나타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도로명주소는 건물 번호를 주소로 사용했던 역사적 배경, 여기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용하는 보편성, 그리고 위치 찾기의 편리성을 고려하여 도로마다 이름을 부여한 것이다. 도로를 따라 위치한 건물에 번호를 체계적으로 부여하여 도로명과 건물 번호를 표현하는 주소이다.

하지만 현재 주소의 부여는 도로를 기준으로 하고 있어서 길이나 건물이 없는 빈 땅은 도로명주소가 부여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산악이나 해양 같은 도로명주소가 없는 지역에서 응급 상황 발생 시 구조기관에 위치를 설명하는 것이 어렵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2013년부터 행정안전부 주관으로 설치한 것이 바로 국가지점번호판이다. 국가지점번호란 국토 및 이와 인접한 해양을 격자형으로 일정하게 구획한 지점마다 부여한 번호(문자와 아라비아숫자로 구성)를 말한다. 한글 문자 2개와 아라비아숫자 8개를 조합하여 나타내며, 전국을 하나의 좌표 체계로 표현한다. 동시에 기관마다 개별적으로 운용하던 위치 표시 체계를 통합했다.

예를 들면 “다라 0519 4817”(오룡산 정상)은 기준점에서 동쪽으로 205.19km(다 0519), 북쪽으로 348.17km(라 4817) 지점을 뜻한다. 기준점은 마라도에서 남서쪽으로 약 245km가량 떨어진 지점이다. 전국을 100km×100km 격자로 나눈 뒤, 그 기준점에서부터 격자마다 서에서 동으로, 남에서 북으로 각각 가나다순으로 한글 문자를 부여한다. 지점번호 중 앞에 표시된 네 자리 숫자가 동쪽 거리를 나타내는 숫자이고 뒤의 네 자리 숫자는 북쪽 거리를 나타낸다. 구조 요청을 할 때 해당 지점번호판 위치를 119에 알려 주면 정확한 위치 파악으로 빠른 구조가 가능하다.

우리 도에 설치된 국가지점번호판의 개수는 2021년 3월 기준으로 6650개이다. 매년 등산로나 해안가 등 사고 취약 지역에 200여 개의 지점번호판을 새로 설치하여 안전망을 더욱 촘촘히 해 나가고 있다.

화려한 봄꽃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무성한 초록 숲으로,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그리고 하얀 눈꽃으로 변할 것이다. 자연에 심취하는 것만큼이나 등산길 중간중간에 있는 국가지점번호판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 보자.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떠난 여정에 안전까지 확보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산속에 우리의 안전을 지켜 주는 수호천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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