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알아차린 삶의 지혜
2021년 04월 15일(목) 23:10 가가
먹구름이 몰려오는가 싶더니 후두둑 소나기가 쏟아진다. 처마를 타고 내리는 빗줄기는 마당에 내려앉은 순간에도 질서를 흩트리지 않는다. 묵직하게 내리는가 싶더니 날렵한 동작으로 착지한다. 절제된 멋진 동작은 금메달감이다. 훈련된 병사처럼 대열을 벗어나지도 않고 일사분란하다. 그렇다고 똑같은 속도와 굵기도 아니다. 스타카토처럼 내리다가도 때론 답답할 정도로 느린 박자로 춤을 추지만 질서는 정연하다. 느리다고 채근하거나 빠르다고 불평하지도 않는다. 앞다투어 뛰어내릴 법도 한데, 유순한 성격인지 서로 부딪치는 일도 없다. 자유로운 동작에서 절제된 순리를 보여준다.
바람이 불자 빗방울의 몸짓이 금방 달라진다. 지금까지의 일사분란한 동작을 멈추고 처마에서 떨어지는 순간 몸을 뒤튼 채 내리기도 한다. 사다리를 타고 내리듯 규칙적으로 내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자신의 숨은 끼를 발휘하듯 공중에서 펼치는 묘기는 진기에 가깝다.
하나로 합쳐지다가도 뿔뿔이 사방으로 흩어져 예상치 못한 곳에 낙하하기도 한다. 처마와 마당을 잇는 짧은 공간에서 연속 동작으로 펼치는 공중곡예는 아찔한 순간을 맞지만, 지상에 안착하는 순간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다. 땅에서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하나임을 확인한다.
그리고는 어깨동무를 한 채 낮은 곳을 향해 여유롭게 흘러간다. 끈끈한 우애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모습이 대견하다.
세차게 내리던 소낙비가 가랑비로 바뀌는가 싶더니 이내 말갛게 갠 하늘이 고개를 내민다. 소나기에 목욕한 햇볕이 신선하다.
잔디에 머물던 빗방울이 햇살과 짝을 이뤄 오색영롱한 빛을 발산한다. 맑고 고운 빛깔에 시선을 뗄 수 없다. 마당의 잔디를 파릇하게 단장시킨 물방울이 고맙다. 잎마다 뒹굴던 빗방울은 햇살에 하나 둘 종적을 감춘다. 좀처럼 흔적을 남기진 않지만 이번에는 촉촉한 습기를 대지에 남겨 두었다. 어디에 머물든 간에 물의 속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때와 장소에 따라 자연스럽고도 대담하게 변신을 꾀하고 있다. 질서에 순응하는 빗방울이다.
고지식하고 미련스럽게 달려온 내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앞다투어 가려고 경적을 울려 대거나 과속하는 법도 없다. 급하고 바쁘다고 해서 얌체 짓도 않는다. 벼랑길 같은 위험천만한 곳이 널려 있지만 그 어디에도 준수해야 할 표지판이나 단속 카메라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수많은 제어 장치가 있음에도 사고로 몸살을 앓는다. 위반의 대가가 목숨을 담보로 할 만큼 위험한데도 말이다.
질서를 허물고 약자를 얕잡거나 짓밟는 일이 일어나는 인간사와는 달리 순리를 거역하는 법이 없다. 막히면 돌아가고 웅덩이를 만나면 가득 채운 다음에야 낮은 곳을 항한다. 순리의 백미가 아닌가?
비 갠 밤하늘을 바라본다. 반짝이는 별들이 꽃이 된다. 꽃길 사이로 걷고 있는 내가 보인다. 길어온 삶의 궤적이 뒤엉켜 곳곳이 찢어지고 굽고 패인 생채기로 얼룩져 있다. 잔디의 우직한 매력이나 오묘한 섭리에 순응하는 빗물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기 보다는 늘 화려한 장미꽃으로 인정받고 싶었나보다. 지천명을 살아오는 동안 너저분하게 남겨진 발자국이 부끄럽다. 순간 삶의 궤적을 깨끗이 닦고 싶다는 충동이 뇌리를 자극한다. 남은 생은 어떻게 갈무리해야 할지도 명확해진다.
질서와 순리에 순응하는 것이야말로 나를 지켜내는 유일한 방법임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하나로 합쳐지다가도 뿔뿔이 사방으로 흩어져 예상치 못한 곳에 낙하하기도 한다. 처마와 마당을 잇는 짧은 공간에서 연속 동작으로 펼치는 공중곡예는 아찔한 순간을 맞지만, 지상에 안착하는 순간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다. 땅에서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하나임을 확인한다.
세차게 내리던 소낙비가 가랑비로 바뀌는가 싶더니 이내 말갛게 갠 하늘이 고개를 내민다. 소나기에 목욕한 햇볕이 신선하다.
잔디에 머물던 빗방울이 햇살과 짝을 이뤄 오색영롱한 빛을 발산한다. 맑고 고운 빛깔에 시선을 뗄 수 없다. 마당의 잔디를 파릇하게 단장시킨 물방울이 고맙다. 잎마다 뒹굴던 빗방울은 햇살에 하나 둘 종적을 감춘다. 좀처럼 흔적을 남기진 않지만 이번에는 촉촉한 습기를 대지에 남겨 두었다. 어디에 머물든 간에 물의 속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때와 장소에 따라 자연스럽고도 대담하게 변신을 꾀하고 있다. 질서에 순응하는 빗방울이다.
고지식하고 미련스럽게 달려온 내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앞다투어 가려고 경적을 울려 대거나 과속하는 법도 없다. 급하고 바쁘다고 해서 얌체 짓도 않는다. 벼랑길 같은 위험천만한 곳이 널려 있지만 그 어디에도 준수해야 할 표지판이나 단속 카메라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수많은 제어 장치가 있음에도 사고로 몸살을 앓는다. 위반의 대가가 목숨을 담보로 할 만큼 위험한데도 말이다.
질서를 허물고 약자를 얕잡거나 짓밟는 일이 일어나는 인간사와는 달리 순리를 거역하는 법이 없다. 막히면 돌아가고 웅덩이를 만나면 가득 채운 다음에야 낮은 곳을 항한다. 순리의 백미가 아닌가?
비 갠 밤하늘을 바라본다. 반짝이는 별들이 꽃이 된다. 꽃길 사이로 걷고 있는 내가 보인다. 길어온 삶의 궤적이 뒤엉켜 곳곳이 찢어지고 굽고 패인 생채기로 얼룩져 있다. 잔디의 우직한 매력이나 오묘한 섭리에 순응하는 빗물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기 보다는 늘 화려한 장미꽃으로 인정받고 싶었나보다. 지천명을 살아오는 동안 너저분하게 남겨진 발자국이 부끄럽다. 순간 삶의 궤적을 깨끗이 닦고 싶다는 충동이 뇌리를 자극한다. 남은 생은 어떻게 갈무리해야 할지도 명확해진다.
질서와 순리에 순응하는 것이야말로 나를 지켜내는 유일한 방법임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