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vs 허구연
2021년 04월 13일(화) 23:30

이재남 광주양산초등학교 교감

중동의 한 설화에는 이런 얘기가 전해 오고 있다. 아주 넓은 강을 건네주면서 밥벌이를 하는 한 뱃사공이 있었다. 그는 아주 적은 돈을 받고서 여행자들이 강을 건널 수 있게 해 주었다. 어느 날 책과 사전을 가득 짊어진 학자가 뱃사공에게 강을 건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학자가 배에 오르자 뱃사공은 반갑게 맞이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학자는 뱃사공이 배운 것이 없어서 문법을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뱃사공에게 물었다.

“당신은 학교에 다닌 적이 없나요?” 뱃사공이 노를 저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네, 저는 학교에는 가본 적이 없습니다. “ 학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차면서 “당신은 참 인생을 헛살았구려”라고 말했다. 뱃사공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지만, 묵묵히 노를 저었다. 이윽고 배가 강 중간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파도가 몰려와 배를 뒤집고 말았다. 두 사람은 물살에 휩쓸려 서로 떨어졌다. 뱃사공은 허우적거리는 학자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헤엄치는 법을 배운 적이 있습니까?” “어푸어푸, 아니오!” 그러자 뱃사공이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인생 전체를 잃게 되었군요.”

이 이야기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뭐니 뭐니 해도 끝까지 살아남는 놈이 장땡(?)이라는 얘기다. 아무리 많이 알고 유능해도, 위기의 상황에서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논의는 교육에도 이론과 실제, 경험과 지식,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논하는 중요한 주제로 종종 인용되곤 한다.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결과적으로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돈과 명예를 가졌지만 지병을 이기지 못하고 단명했다는 이야기는, 인생을 논하는 서민들의

술 안줏감보다도 더 중요한 심오한 철학이 담겨있는 것 같다.

따뜻한 봄과 함께 야구 시즌이 돌아왔다.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은 국보급 투수로, 불펜에서 몸만 풀어도 상대 팀이 벌벌 떨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유명한 선수이다. 야구해설가 허구연은 야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감독 등 오랜 세월 야구를 지켜보면서 얻은 지혜를 바탕으로, 명해설가로서 예측할 수 없는 야구의 묘미를 전해 주고 있다. 전자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할 수 있다’의 영역이고, 후자는 ‘야구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영역이다.

스포츠 구단주가 감독을 선임할 때 어떤 기준을 중요하게 여길까? 현역 시절 성적을 잘 낸 유명한 선수 출신을 선호할까, 명성은 부족했지만 덕과 지략을 갖춘 박항서 선수 같은 이를 더 선호할까? 그 결과는 승률에 따라 판단될 문제이지만, 교육의 영역에도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경험을 통해서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실질적인 교육이 중요하다는 견해와 인류가 쌓아 올린 소중한 기본적인 지식과 지혜를 교육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 물론 이런 논의는 두 영역 다 고유한 가치가 있다는 논리로 얼버무려지지만, 실제 구단주의 처지에서는 매우 심각한 선택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통상적으로 우리는 실기나 선수 출신 교사가 수업을 더 잘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할 수가 있는 것’과 ‘가르치는 영역’은 완전히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전자는 나의 부단한 성찰과 노력으로 일정한 경지에 다다른 결과이고, 후자는 배우는 자의 준비 정도를 충분히 파악하여 적절하게 고려할 줄 아는 데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잘 가르치는 교사는 ‘할 수 있다’는 덕목을 갖추고 있지만, ‘할 수 있다’는 덕목을 갖춘 이들이 다 ‘잘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잘 가르치는 교사는 ‘잘 안다’는 덕목을 갖추고 있지만, 잘 안다고 해서 모두 다 ‘잘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교사 전문성의 핵심은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꿈꿀 수 있게 하는 청출어람(靑出於藍)에 있는 것 같다. 이렇듯 시대에 따라 수많은 선동열과 허구연, 박항서가 본의 아니게 끌려 나와 의문의 1패씩을 주고받으며 ‘이론과 실제’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그나저나 올해 KIA 야구가 개운한 경기를 많이 보여줘서, 코로나 스트레스를 확 날려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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