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웅 전남도교육감] 여순10·19-제주 4·3 연대와 공유로 교실서 만나다
2021년 04월 01일(목) 23:00
전라남도교육청은 지난 3월 12일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과 의미 있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두 교육청은 제주 4·3과 여순 10·19를 매개로 연대와 공유의 평화·인권 교육을 함께 진행하기로 약속했다. 계기 수업과 기념행사, 체험학습, 평화·인권 교육 관련 연수 및 수학여행 등의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고, 연구 활동을 지원하기로 했다. 지난날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디딤돌로 삼기 위함이다.

제주 4·3과 여순 10·19는 쌍둥이처럼 연결되어 있다. 제주 4·3이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 반대를 외치며 피로써 저항한 민중항쟁이라면, 여순 10·19는 그 숭고한 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여수·순천 지역 군인과 시민들의 정의로운 투쟁이라 할 수 있다.

제주 4·3이 없었다면 여순 10·19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여수의 14연대 군인들은 제주 토벌 출동 명령을 제주 사람들의 통일정부 수립 염원을 짓밟는 것으로 여겨 단호히 거부했다. 당시 그들이 외친 ‘동족상잔 결사반대’라는 구호에 그 숭고한 뜻이 담겼다. 결국 두 사건은 단독 정부 수립에 대한 저항이자 통일 정부 실현의 염원을 담고 있다. 이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국가를 만들려는 우리 지역민들의 나라 사랑과 정의로운 정신의 표현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여순 10·19란 용어 속에 들어있는 여수와 순천이라는 지역명 때문에 이 지역에서만 발생한 사건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 결과 그 피해 지역이 전남 전체와 전북 및 경남 일부를 포함해 37곳에 이른 것으로 밝혀졌다. 제주도까지 포함하면 그 영역은 더 넓어진다.

역대 보수정권들은 두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진실을 밝혀달라는 생존자와 유가족들의 외침을 외면하고 짓밟았다. 그래서 두 사건은 반세기가 넘도록 입 밖에 내놓지 못하고, 알고서도 몰라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소설가 김석범은 이것을 ‘기억의 자살’이라고 정의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기억이 말살당한 곳에는 역사가 없고, 역사가 없는 데는 인간의 존재도 없게 된다.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은 사람이 아닌 주검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정의는 기억 속에서 실현된다”는 철학자 샤르트르의 말처럼, 두 지역민들은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려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여수와 순천을 중심으로 전남동부지역사회연구소(1989년), 여수지역사회연구소(1995년), 여순사건 화해와 평화를 위한 순천시민연대(2003년), 순천대 여순연구소(2018년), 여순10·19특별법 제정 범국민연대(2018) 등의 시민단체가 결성됐다.

여순 10·19 생존자와 유족들도 마침내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2000년 유족회를 만들었다. 2006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 만들어지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발족해 여순 10·19와 관련된 1102건의 진상이 밝혀졌다. 이를 바탕으로 유족은 명예 회복과 배·보상 판결을 받기도 했다. 순천·여수 시의회는 특위를 구성해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전라남도의회에서도 ‘여수·순천 10·19사건 특위’를 결성해 지난해 ‘전라남도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 규명 및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국회에서도 여순 10·19 관련 특별법을 제정하기로 여야가 합의해 법안 소위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특별법을 두 번이나 제정한 제주 4·3과 비교하면 대단히 늦은 노력이지만, 이렇게라도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이제 제주 4·3과 여순 10·19가 지닌 본질과 정신, 그것이 주는 교훈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두 사건은 당시 국민들이 갖고 있던 통일 정부 수립의 염원을 국가 권력이 폭력으로 진압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여기에는 인권과 평화, 그리고 통일의 염원이 오롯이 담겨 있다. 두 교육청이 연대해 다시는 침묵이 강요당하지 않게 해야 한다. 파편화된 기억을 연결해 역사의 진실에 다가서도록 해야 한다. 이 소중한 연대가 역사의 진실과 마주하며, 평화·인권 교육으로 이어지고, 미래의 희망으로 피어나기를 바란다. 제주의 동백과 여수의 동백이 하나 되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의 큰 꽃봉오리로 피어 오르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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