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반대자 사찰과 민족 영가 ‘한강은 흐른다’
2021년 03월 30일(화) 08:00

이기영 초록교육연대 공동대표, 호서대 교수

요즘 선거철이 되면서 수십조 원의 국민 세금을 낭비해 한반도의 주요 강 곳곳을 막아 생태계를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수질을 악화시키고 홍수를 가중시킨 이명박(MB) 정부의 4대강 사업이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국정원 정보 공개를 통해 당시 MB정부가 4대강 반대자에 대한 사찰을 주도한 정황이 확인되면서 국가에 의한 불법적인 국민 탄압 행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당시 ‘한강은 흐른다’ 음반을 내고 일간지에 수십 편의 반대 칼럼을 기고하면서 대운하 반대 운동에 나섰던 나는 매우 심한 사찰과 탄압으로 우울증에 걸려 고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노래는 이제 민족혼을 담은 국민 영가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앞으로 파시즘 국가에서나 가능한 이런 끔찍한 사찰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남긴다.

MB정부는 정권을 잡자마자 ‘녹색성장’이란 구호를 외치면서 이와는 정반대로 한반도에서 녹색을 지워 버리는 정책을(green washing)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또한 대운하 반대 운동을 해 온 환경단체들의 정부 지원을 끊으며 감사에 나섰다. 그리고 혐의가 없으면 온갖 거짓 소문을 퍼뜨리면서 책임자 탄압을 자행해 현직에서 몰아내기 시작했다. 게다가 보를 막으면 물이 멈춰 수질이 악화되는데도 물이 불어나 수질이 깨끗해진다는 억지 주장을 폈다. 운하로 배가 다니면 프로펠러가 돌면서 물을 정화 시킨다는 등 말도 되지 않는 홍보로 국민들을 속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어렸을 적 한강 하류인 행주에는 곳곳에 모래섬이 있었다. 강가는 대부분 모래사장이었다. ‘지렁이 낚시’만 던지면 1급수에 사는 모래무지가 줄줄이 잡혔다. 준비해 간 냄비에 강물을 그대로 떠서 국수와 고추장을 풀어 어죽인 ‘털레기’를 해 먹었다. 그러나 1989년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88올림픽 당시 안보를 핑계로 현재 일산신도시 초입에 신곡수중보를 만들면서 강물이 막혀 3급수로 전락했다. 물길이 바뀌자 모래섬인 방말섬은 장마로 사라졌다. 행주 명물이었던 웅어와 황복은 보가 물길을 막아 더 이상 올라오지 못했다.

2008년 3월 25일. 2470명의 교수들이 서명한 대운하 반대선언 시 대표 100인으로 참여해 ‘한강은 흐른다-오세영 시’ 음반을 발표하면서 오프닝 송으로 불렀다. 역사상 가장 많은 교수들이 모여 시작된 지식인들의 연이은 선언으로 결국 대운하 포기를 발표했던 MB는 ‘4대강 살리기’란 이름으로 은밀하게 다시 공사를 시작했다. 운하의 기준인 6미터 깊이로 파라는 MB 지시에 반대했던 국책연구기관의 전문가들은 죄다 해고되었다. 대신 낙하산으로 내려보낸 비전문가들이 환경영향평가를 흉내만 내고 통과시켰다.

또한 처음엔 4대강 사업의 강바닥 깊이도 2미터로 낮게 발표했는데 점점 올리더니 결국엔 대운하 원안대로 6미터로 높여 전광석화처럼 밀어붙였다. 그 결과 이젠 전국의 큰 강들이 물이 흐르는 하천이 아니라 10배 가까이 많은 물을 채워 둔 정지된 호수가 되어 버렸다. 이 때문에 여름이 되면 ‘녹차라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녹조가 퍼지고, 마이크로시스틴이란 독성물질을 내뿜으며 악취가 진동했다. 강과 바다를 오르내리며 살던 회유성 물고기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붕어나 메기 등 정지된 흙탕물에서만 사는 어종으로 바뀌면서, 바닥엔 썩은 물에서나 보이는 끈벌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MB정부는 유신독재 시절의 구금이나 끔찍한 고문만 빼고는 마구잡이 사찰을 자행한 전형적인 파시스트 정부였다. 인터넷에서는 관변단체들이 뿌린 것으로 보이는 ‘대운하 반대 교수 블랙리스트’가 떠돌아다녔고, 조직적으로 악용되는 흔적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결국 연구비가 죄다 끊기고 대학원생도 못 받자 연구실 문을 닫아야 했다. 게다가 KBS1라디오와 교통방송에서 수년 동안이나 매일 방송해 왔던 ‘건강·환경 칼럼’과 모든 시군에서의 공공 특강도 다 중단되고 말았다. 이렇게 입을 닫고 살아야 하는 식물인간 신세가 되자 난 우울증에 빠지면서 대중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정권이 바뀌고 일부 강의 보가 열리면서 강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BOD가 감소하고 물고기가 올라오는 등 생태계가 되살아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한반도의 강물은 아직도 대부분 보 때문에 흐르지 못하지만 반만 년을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온 한국인의 모습과 민족혼을 오롯이 담은 오세영 시인의 시 ‘한강은 흐른다’로 만든 노래는 이제 중학교 음악교과서와 한국 가곡집에도 실렸다. 또한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신년 음악회에서 400명의 K코러스 합창단에 의해 ‘아리랑’과 함께 연주되는 등 한민족의 영가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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