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기계’ 전성시대
2021년 03월 22일(월) 04:00

한근우 한국폴리텍대학 전남캠퍼스 전기과 교수

‘분리 불안’이라는 말이 있다. 평소 애착을 느끼는 대상과 멀어지면서 생기는 증세로 불안하고, 가슴 두근거림 등의 증상을 보인다. 흔히 이런 ‘분리 불안’은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 어린아이에게서 나타나며, 최근에는 반려동물을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이런 증상의 반려견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분리 불안’은 꼭 엄마와 아이, 혹은 주인과 반려견처럼 살아 숨 쉬는 생명체와의 관계에만 한정된 것은 아닌 듯하다.

집·학교·사무실 등 우리가 머물던 공간에 스마트폰을 두고 나와 황급히 다시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엄마 같은(?) 스마트폰을 보자마자 마음 한구석에 쌓여 있던 불안감은 어느새 증발해 버린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만 해도 우리는 통화와 문자가 주력이었던, 폴더형 휴대폰만으로도 현대문명을 영위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148g 무게의 스마트폰은 다양한 기능을 보여주며 소비자들을 유혹했고, 마침내 우리를 무장해제시키고 만다. 스마트폰은 통화와 문자는 물론이고 음악과 사진, SNS를 통해 소통하며 다양한 정보를 손쉽게 검색해 볼 수도 있다. 이런 다양한 기능들로 인해 하루의 시작은 스마트폰의 알람으로, 하루의 끝은 스마트폰이 들려주는 자장가로 끝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어느덧 우리는 차가운 기계장치인 스마트폰에 기대고, 붙잡힌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기계장치 이전에 2만 7000년 전 늑대를 사육하면서부터 인간은 동물을 반려 대상으로 맞이했다. 늑대는 세월을 거듭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견종으로 진화된다. 결국 인간은 생사를 함께한 반려동물에 큰 애착을 느끼게 되었고, 반려동물 역시 인간에게 의지하고 애착을 느끼며 기대게 된다.(인간이 개를, 개가 인간을 서로가 길들인 셈이다.)

‘반려’(伴侶)의 사전적 의미는 ‘짝이 되는 동무’이다. 즉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반려 대상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전문가들에 따르면 의지할 만한 반려 대상은 인간에게 고독감을 줄여 주거나, 어려운 주변 환경에서도 감정적 위안을 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들 한다.)

그동안 인간은 기계장치 따위를 이용해 부족한 신체적 능력을 끊임없이 보완해 왔다. 수만 년 전 무명의 발명가가 만든 수레바퀴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동력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 주었다. 렌즈(lens)의 발명은 선명한 빛과 미지의 우주, 세포 속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이제는 fMRI(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와 같은 의료기기를 통해 복잡하기 그지없어 소우주라고 불리우는 인간의 두뇌(brain)와 의식의 세계까지도 관찰할 수 있게 됐다. 이 외에도 일상적이며, 사소한 것까지 모두 나열한다면, 지면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모두 할애해도 모자라다. 형태와 기능은 다르지만 인간을 위해 길들여진 기계장치들인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어느덧 우리의 삶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동무가 되고 말았다. 즉 인간과 함께해야 할 ‘반려 기계’인 셈이다.

젖먹이 어린 아기가 난생 처음 접한 바퀴 달린 이동수단인 ‘보행기’를 빌어 자유의지를 발휘하고, 쇠약한 노인에게는 보청기나 돋보기 안경의 형태로 우리와 함께한다. 우리 삶의 깊숙한 곳까지 함께하는 반려 기계는 ‘반려자’ ‘반려동물’과는 다르게 감정으로는 교감할 수 없는 차가운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반려 기계’를 원하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안정감을 갈구는 인간의 마음. 그것이 기계든 생물이든 간에 우리는 무언가에 잠시나마 기대어 안정을 찾고 싶은 것은 아닐까? 혹자는 기계가 인간의 반려자가 되겠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제아무리 생명이 없는 기계 덩어리일지라도, 나와 함께한 애착이 담긴 기계장치는 말없이 오직 나만을 바라보는 존재이다.(반려동물이 사랑받는 이유와 비슷하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점점 줄어들고, 우리 주변 곳곳에서 코로나 블루스(Corona Blues)가 울려 퍼지는 지금 이 시대. 비록 차가운 ‘반려 기계’ 따위일지라도, 우리는 그들에게 잠시나마 기대고 위로받고 싶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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