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욱 선임기자 겸 서울취재본부장] 분노가 희망이다
2021년 03월 17일(수) 05:30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비공개 정보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 의혹 파문이 정국을 온통 뒤흔들고 있다. 공정과 정의를 내세운 ‘촛불 정부’의 이면에 자리한 불공정하고 불의한 사회의 민낯이 드러나고 말았다. 이는 코로나19 사태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살아가고 있는 ‘민심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무능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25차례의 대책과 온갖 법률을 내놓았지만 집값은 물론 전·월세 가격마저 폭등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수행하는 LH 임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마저 나오면서 국민의 상실감과 박탈감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맹탕 조사에 들끓는 민심◀

하지만 LH와 국토교통부 직원(1만4천여 명)에 대한 정부합동조사단의 1차 조사는 시민단체가 기존에 폭로한 13명 외에 겨우 7명의 투기 의심 사례를 확인하는 데 그쳤다. ‘맹탕 조사’라는 비난과 함께 민심의 반발을 부르고 있는 이유다. 이는 차명으로 이뤄지는 투기 거래 특성상, 공직자 본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가 투기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실효성이 없다는 점에서 예견된 결과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민심은 이제 LH 등 공기업을 넘어 공직사회 전반 나아가 정치권을 주시하고 있다. 부동산 투기가 권력과 자본 및 정보를 가진 기득권층의 일반화된 구조적 문제 아니냐는 것이다. 자고 나면 몇 억 원씩 올라 있는 아파트 등 부동산 가격 급등은, 투기할 돈도 정보도 없는 서민들 입장에선 말 그대로 복장 터질 일이기 때문이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지은 ‘이노행’이라는 우화시가 있는데 이는 작금의 현실이 조선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백성들에게 해악이 되는 쥐를 잡기 위해 고양이를 길렀더니 그 고양이가 오히려 더 큰 행패를 부린다는 내용이다. “백성들은 쥐 등쌀에 나날이 초췌하고/ 기름 마르고 피 말라 뼈마저 말랐네/(중략)/그런데 너는 지금 쥐 한 마리 잡지 않고/ 도리어 스스로 도둑질을 하는구나.” 기막힌 풍자가 아닐 수 없다. 투기 세력을 막아야 할 공직자들이 오히려 투기의 주체가 되는 지금의 행태를 꼭 꼬집어 말하는 듯하지 않는가.

어찌 됐든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민심이 요동치면서, 오는 4월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는 여권으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 됐다. 당장 문재인 대통령이 부동산 적폐 청산을 남은 임기 동안 핵심 국정과제로 삼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정세균 국무총리도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여당인 민주당도 선출직 공직자 부동산 투기 전수조사와 공직자 투기 방지 입법을 추진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제 와서 이렇게 요란을 떨 거라면 그동안 여권은 뭘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부동산 적폐를 몰랐으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방치했다면 국민을 기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LH 사태로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의 전모가 밝혀지고 재발 방지 입법이 제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당장 여야 정치권은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염불보다는 잿밥’에 눈이 어두워 정쟁에만 몰입하고 있다. 여기에 투기에 나선 공기업 직원이나 공직자들을 제대로 밝혀내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결국 과거 대형 부패 스캔들처럼 피라미 몇 마리만 건지고 수사가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어느 LH 직원이 투기 의혹 기사에 이런 댓글을 달아 조롱한 것도 바로 이 때문 아니겠는가. “털어 봐야 차명으로 해 놨는데 어떻게 찾겠나.” “어차피 한두 달만 지나면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져 물 흐르듯 지나갈 것이다.”



▶한두 달 지나면 결국 잊힐까◀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자본소득과 부동산 투기로 부가 축적되는 반면 근로소득은 삶의 발판이 되지 못하는 현실이 일상화됐다. 서민들은 노후 걱정에 잠 못 이루고, 20~30세대는 경제 불황과 좁은 취업문아니 주택 가격 상승 등 불안한 미래에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지 오래다. 사회 전반에 ‘영끌 빚투’(영혼까지 끌어 모을 정도로 빚내서 투자)가 횡행하고 ‘벼락거지’(부동산과 주식 등으로 남들이 부자가 될 때 가만히 앉아 상대적으로 빈곤해진 사람)가 속출하는 등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불공정에 대한 분노와 더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과 염원이 촛불 혁명을 만들었듯이, 이제 부조리한 일상을 바로잡기 위해 시민의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내년은 대선의 해다. 깨어 있는 시민의 힘으로 정치권을 강하게 압박해 보다 공정한 사회의 룰을 만들어 내야 한다. 내일에 대한 희망은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세상은 좀 더 나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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