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성균관대 학부대학 글쓰기 교수] 통일 문학 2.0
2021년 03월 16일(화) 09:00 가가
코로나19 사태로 지구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우리 일상과 의식 속에서 북한이란 존재가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다. 다들 자기 한 몸도 건사하기 힘들다는데 남북관계에 대해 말을 꺼내려니 편치만은 않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를 제대로 준비하려면 북한과의 관계 복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2000년 6·15선언에 힘입어 ‘통일 문학론’을 제창한 바 있다. 마치 코리아 단일팀 축구와 탁구의 성공 사례처럼 남북이 자랑하는 문학을 화합적으로 결합하자는 제안이었다. 일제 강점기 최고의 역사소설 ‘임꺽정’의 리얼리즘 전통이 이남의 ‘토지’ ‘장길산’ ‘태백산맥’과 이북의 ‘두만강’, ‘갑오농민전쟁’ 등으로 이어졌으니 이를 중심으로 통일 문학사를 구상하자고 하였다.
그러나 지난 세월은 그러한 문학적 상상력을 허용하지 않았다. 민족감정에 기대고 구호만 앞선 통일 운운이 실은 분단으로 이득 보는 권력층의 자기중심적 흡수 통합의 속내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가령 서울과 평양에서 나온 ‘통일 문학’ 이름의 잡지 6종과 전집 2종을 비교해 보니 실상은 기대와 크게 달랐다. 한국 문학과 ‘조선 문학’의 대표작을 합친 통일 문학이 아니라, 평양이 보고 싶은 ‘남조선 문학’과 서울이 알고 싶은 ‘북한 문학’을 붙여서 통일 문학이라고 내세웠을 뿐이다. 그것은 상대를 무시하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 편집한 허상에 가깝다. 어디 문학뿐이랴.
코로나19 사태로 인류 문명사가 전환기를 맞은 지금, 성급하게 20세기식 통일을 구호처럼 반복할 수는 없다. 일상을 파괴하는 분단과 냉전 체제를 끝내고 불가역적인 평화 시대를 정착시킬 때다. ‘평화 체제’를 향한 코리아 문학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남북이 대화할 때 통역이 필요 없고 작품을 읽을 때 번역이 필요 없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마음의 문을 열고 문학예술을 통해 상대의 삶과 생각을 받아들이면, 그를 통해 한겨레 소프트파워의 힘을 신뢰하고 ‘내부 냉전’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혹여 급변 사태로 졸속 통일이 되면 극심한 지역·계급·이념 갈등이 폭발할 테니, 그를 막을 ‘마음의 통합’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런 준비는 긴 호흡으로 차근차근 해야 한다. 우리 특유의 ‘빨리빨리’ ‘속도전’ ‘동양 최대’ 같은 조급증과 무리수, 그리고 엄숙주의를 경계해야 할 터이다.
여기서 엄숙주의 경계란 민족·통일이란 이념적 당위를 내세워 일상을 억압하는 장치가 되는 것을 경계하자는 뜻이다. “돈만 많으면 행복하다”거나 ‘금수저 흙수저’ ‘건물주’ 식으로 무한경쟁에 시달리는 이남 ‘국민’과, “지도자를 떠받들고 자력갱생하자!”는 이북 ‘공민’이 “싸우면서 건설하자!” 식의 상시적 전쟁 공포와 체제 경쟁에서 벗어나면 된다. 1등주의에 빠져 업무 노동과 학습 노동에 시달리는 우리와, “사탕 한 알보다 총알 한 방이 더 중요하다”는 이북 사람들이 벼랑 끝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도록 문학예술이 웃음과 여유를 되찾게 하면 된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고, 한미연합훈련에 북한이 비난조차 하지 않는 무대응은 남북 관계에선 치명적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말미암아 남북 관계는 최악의 위기지만, 이때가 바로 소통의 새로운 플랫폼을 개발할 기회이기도 하다. 가칭 ‘e-Korea’ 같은 인터넷 플랫폼을 만들어 ‘코리아-한겨레 디아스포라(이산)-한국어권(Koreanphone)’ 콘텐츠의 소통 창구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좁은 의미의 (남)한국+(북)조선 문학뿐만 아니라, 전 지구를 넘나드는 한겨레의 한글문화를 담아낸 ‘한겨레 문화 콘텐츠’의 디지털 용광로를 상상한다. 남북의 시집·소설책·문예지 같은 종이책을 스캔하여 ‘책 읽어 주고 화면과 음악도 담긴 동영상’으로 만들자. 유튜브 같은 인터넷을 통해 남북한 주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한겨레 디아스포라, 한글 사용자가 문학으로 소통하며 마음의 통합을 도모하면, 그것이 통일 문학 2.0이 될 것이다.
이념과 문화와 가치관이 서로 다른 분단 당사자도 최소한의 이해·소통·교류를 일종의 시뮬레이션 e게임처럼 즐기는 정도면 된다. 남북 대표가 만나 사진 찍는 식으로 통일을 이미지로만 소비하면 안 된다. 상대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정보·소통도 태부족인 채 곧바로 통일·통합을 고집스레 외치지 말자. 통일보다 통이(通異), 소통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난 세월은 그러한 문학적 상상력을 허용하지 않았다. 민족감정에 기대고 구호만 앞선 통일 운운이 실은 분단으로 이득 보는 권력층의 자기중심적 흡수 통합의 속내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가령 서울과 평양에서 나온 ‘통일 문학’ 이름의 잡지 6종과 전집 2종을 비교해 보니 실상은 기대와 크게 달랐다. 한국 문학과 ‘조선 문학’의 대표작을 합친 통일 문학이 아니라, 평양이 보고 싶은 ‘남조선 문학’과 서울이 알고 싶은 ‘북한 문학’을 붙여서 통일 문학이라고 내세웠을 뿐이다. 그것은 상대를 무시하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 편집한 허상에 가깝다. 어디 문학뿐이랴.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고, 한미연합훈련에 북한이 비난조차 하지 않는 무대응은 남북 관계에선 치명적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말미암아 남북 관계는 최악의 위기지만, 이때가 바로 소통의 새로운 플랫폼을 개발할 기회이기도 하다. 가칭 ‘e-Korea’ 같은 인터넷 플랫폼을 만들어 ‘코리아-한겨레 디아스포라(이산)-한국어권(Koreanphone)’ 콘텐츠의 소통 창구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좁은 의미의 (남)한국+(북)조선 문학뿐만 아니라, 전 지구를 넘나드는 한겨레의 한글문화를 담아낸 ‘한겨레 문화 콘텐츠’의 디지털 용광로를 상상한다. 남북의 시집·소설책·문예지 같은 종이책을 스캔하여 ‘책 읽어 주고 화면과 음악도 담긴 동영상’으로 만들자. 유튜브 같은 인터넷을 통해 남북한 주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한겨레 디아스포라, 한글 사용자가 문학으로 소통하며 마음의 통합을 도모하면, 그것이 통일 문학 2.0이 될 것이다.
이념과 문화와 가치관이 서로 다른 분단 당사자도 최소한의 이해·소통·교류를 일종의 시뮬레이션 e게임처럼 즐기는 정도면 된다. 남북 대표가 만나 사진 찍는 식으로 통일을 이미지로만 소비하면 안 된다. 상대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정보·소통도 태부족인 채 곧바로 통일·통합을 고집스레 외치지 말자. 통일보다 통이(通異), 소통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