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연구사] 2000년 전 복암리 마을 다시금 엿보다
2021년 03월 15일(월) 23:00
영산강 물길을 따라 굽이굽이 내려가다 보면,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 일대의 한적한 시골 마을 앞 너른 들판에 우뚝 솟은 동산을 찾게 된다.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고 선 동산은 얼마 전까지 마을의 선산이자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지만, 고대 복암리 마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옛 무덤, 바로 고분(古墳)이다.

이곳은 사적 제404호로 지정된 ‘나주 복암리 고분군’으로 영산강 유역 고대사회를 대표하는 중요한 문화유산 중 하나이다. 특히 ‘아파트형 고분’이라는 별칭을 가진 ‘복암리 3호분’은 하나의 거대한 봉분 안에 독무덤(甕棺墓), 널무덤(木棺墓), 돌방무덤(石室墓) 등의 다양한 매장 풍습이 기원후 3세기대부터 400여 년에 걸쳐 층층이 담겨 있는 곳으로 학계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관심까지 한몸에 받고 있다.

복암리 고분군의 발견은 거대한 고분을 축조하고 오랜 기간 유지할 정도의 세력을 갖춘 토착 집단이 이 일대에 자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고대 복암리 토착 집단의 근거지, 즉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마을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고고학자들은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복암리 고분과 그 주변 일대를 찾아 여러 차례 조사하였다. 그 결과 오랜 시간 땅속 깊이 잠들어 있던 고대 복암리 마을의 흔적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복암리 고분군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곳, 복암리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가 2018년 다시 시작되었다. 뜻하지 않게도 복암리 고분을 축조하였던 시기보다 조금 더 오래된, 흔히 마한으로 불리는 철기시대 마을의 흔적이 드러났다. 2000여 년 전, 마을의 가장자리를 따라 넓게 둘렀던 것으로 추정되는 도랑의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도랑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물이 흐르는 시설로, 고대 마을이나 성(城)의 외곽에는 큰 도랑을 둘러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였다. 이외에도 도랑은 고대 마을의 신성한 영역을 구분 짓는 경계의 의미를 담기도 한다. 복암리 유적에서 발견된 도랑은 최대 3m 정도의 폭으로 둥글게 돌아가는 형태이며, 일부 구간에서는 다섯 개의 도랑이 여러 겹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처럼 넓고 견고한 도랑을 두르고 있었던 마을은 무언가 중요한 시설이 내부에 자리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도랑 내부에는 2000여 년 전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다양한 종류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음식물을 저장하거나 조리하는데 사용한 항아리, 의례용으로 사용한 굽이 달린 토기, 길흉화복을 점치는 점뼈(卜骨), 옷감을 만드는 실 짜는 도구인 가락바퀴(紡錘車), 당시의 동물상을 확인할 수 있는 소·돼지·사슴 등의 뼈조각 등이 함께 발견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복암리 유적의 도랑에서는 제주도에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되는 커다란 항아리와 현무암 덩어리가 출토되었다. 그리고 불과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나주 랑동 유적에서는 중국 신(新)나라의 동전인 화천(貨泉)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고대 해상 교역의 거점 유적으로 그 중요성이 널리 알려진 해남 군곡리 패총(사적 제449호)에서 출토된 유물과 매우 닮아있는 모습이다. 즉 제주도 또는 중국을 잇는 교역로가 바닷길뿐만 아니라 영산강을 따라 내륙 깊숙한 곳까지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가 발견된 것이다.

복암리 마을은 대외 교류의 거점 역할을 할 정도로 높은 위상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세력은 이후 복암리 일대에 거대한 고분이 등장하는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고분을 축조하던 시기에는 나주 랑동 유적과 나주 다시들 유적에서 조사된 집자리를 통해 마을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특히 랑동 유적에서는 한 변의 길이가 10m가 넘는 대형급 집자리가 발견되어 마을의 세력을 보여준다.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며 발전해 나가던 복암리 마을을 비롯한 영산강 유역 일대는 6세기 중엽 이후 백제에 편입된다. 하지만 복암리 마을의 중심적인 역할은 여전히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도성이나 관청 등 거점 지역에서 주로 출토되는 목간(木簡: 글을 적는 나무 조각)이 2008년 복암리 유적에서 발견되면서 복암리 일대의 역사적 가치를 더욱 높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고대 복암리 마을은 오랜 기간 영산강 유역 일대의 중추적인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지금의 한적한 복암리 주변 모습에서 과거를 쉽게 짐작하기 어렵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거대한 고분의 모습은 과거의 영광을 보여주는 듯하다. 앞으로도 고대 복암리 마을의 숨은 가치가 더욱 조명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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