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가치소비’가 필요하다
2021년 03월 10일(수) 23:30

양유수 농협 전남지역본부 축산사업단 차장

돼지는 고구려 시조인 주몽의 탄생 신화에서 돼지우리에 버려진 주몽을 보호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만큼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과 함께해 온 가축이다.

고대 한반도 동쪽 지역에서는 초상이 났을 때 관 위에 돼지를 올려놓고 죽은 자의 양식으로 삼았고, 고구려 시대에는 구혼을 할 때 여자 집에 재물보다는 돼지와 술을 보내 혼인을 성사시켰으며, 하늘에 제사 지낼 때 제물로 사용하는 돼지를 ‘교시’(郊豕)라고 하며 이를 관리하는 관리까지 따로 둘 정도였다.

이러한 돼지가 고려시대에는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의 영향으로, 조선시대에는 오랫동안 먹으면 약효가 받지 않고 풍을 통하게 해서 열병·학질·이질 등의 질병을 가져온다며 기피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때에도 나라나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에는 돼지를 사용했다. 제물로서의 역할이 끝난 돼지를 이웃과 나눠 먹으면서 정도 함께 나누었다.

고려와 조선에 홀대 받던 돼지는 현대로 들어와서 영양학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아 우리 식탁과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돼지고기에 함유된 동물성 단백질은 면역력 향상에 좋은 9가지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또 돼지고기 지방의 녹는점은 33~36도로 사람의 체온보다 낮아 대기오염·황사 등으로 자신도 모르게 체내에 축적된 공해물질을 체외로 배출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그 덕분에 2019년 기준 1인당 돼지고기 연간 소비량은 28.0㎏이나 됐다. 이는 200g 1인분 기준으로 140인분에 해당돼 한 사람당 사흘에 한 번씩은 돼지고기를 먹는 셈이다.

이렇게 우리와 뗄 수 없는 돼지가 최근 부위별 소비 불균형에 의한 가격 왜곡 현상이 심해 한돈 농가는 물론 소비자에게도 문제가 되고 있다. 돼지고기 도매가격은 올해 설 성수기에 ㎏당 3600원대로 생산비인 4200원에 못 미쳤지만, 삼겹살은 1월 평균 가격이 2만 1130원으로 최근 5년 내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는 소비량이 적은 저지방 부위인 등심 및 앞뒤 다리살 재고 적체로 인한 손실분을 지속적으로 수요가 뒷받침되는 삼겹살 등 구이용 부위 판매로 상쇄하기 때문으로, 도매가격의 하락에도 소비자들은 비싼 삼겹살을 구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대로 소비 불균형이 심해진다면 양돈농가는 생산비에도 못 미치는 도매가격에 돼지 사육이 힘들어 지고, 소비자들은 삼겹살을 더 비싼 가격에 구입해야 할지도 모른다.

선호도가 낮은 저지방 부위에 대한 다양한 소비 확대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이를 위해 저지방 부위를 활용한 다양한 조리법을 개발하고 알리는 홍보 활동이 중요하다. 최근 한 방송매체를 통해 뒷다리살을 이용한 가공제품인 햄이 소개돼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그리고 철분이 풍부해 성장기 어린이에게 좋은 안심, 저지방육으로 다이어트에 효과적인 등심, 단백질과 비타민B1이 풍부해 피로 회복에 좋은 뒷다리살, 다용도로 조리할 수 있는 앞다리살 등 잘 소비되지 않는 저지방 부위의 장점을 홍보하며 소비자들이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돼지 한 마리에서 나오는 모든 부위를 귀하게 여기고 맛있게 먹는 가치소비가 이루어진다면, 소비가 안정되어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는 든든한 먹거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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