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미 신안군 예술감독, 행촌문화재단 대표이사] 보라색 다리 건너 ‘퍼플섬’
2021년 03월 05일(금) 08:00
“나는 마침내 대기의 진정한 색을 발견했다. 그것은 보라색이다. 신성한 공기는 보라색이다. 앞으로 3년 뒤에는 모두가 보라색으로 작업할 것이다.” (클로드 모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알려진 예술가. 그들이 비로소 예술적 자유를 누리게 된 시기, 스스로 그리고 싶은 대상을 선택하고 자유롭게 색을 선택하고 사용할 수 있었던 때, 이른바 색채의 혁명의 시기는 인상파의 등장으로부터이다. 인상파 화가들은 밝고 찬란한 대기의 인상을 표현하기 위해 그동안 사용하던 중후하고 안정감 있는 회색 톤을 과감하게 벗어났다. 심지어 금기시하던 검은색과 흰색을 직접 사용하기도 하고 흰색의 화사한 그림자로 회색이 아닌 청색과 보라색을 즐겨 사용하기도 하였다. 예술 작품은 인상파 시대 이전에는 주로 왕실·귀족·자본가 등 주문자의 요구에 의한 주문 생산이 대부분이었다.

예술가들은 스승과 제자들로 팀을 이루어 공동으로 작품을 제작하였다, 주문 작품에는 당연히 한 묶음의 요구 자료도 따라오기 마련이다. 결국, 자유로운 예술가의 예술혼을 안정된 수입과 바꾼 셈이다. 자유의 대가는 당시에도 비싼 값이 필요했다. 왕과 귀족의 초상화나 성당의 성화 제작은 모두 엄격한 제작 기준이 있어서 주문을 받은 예술가 집단은 기준과 도상의 상징을 충실하게 따라야만 했다. 그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요소는 그리 많지 않았던 시절이다. 그중 특히 보라색은 황제의 색으로 왕가나 교황청에서나 쓸 수 있는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안료 또한 상상을 초월하는 비싼 값이었기 때문에 교회에서조차도 보라색이 아닌 붉은색으로 대체해야만 할 정도였다.

순탄치 않은 대선 과정을 거친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보라색이 화제를 모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갈등과 분열을 넘어 ‘통합과 화합’으로 가자는 의미를 강조하며 그 의미 전달을 위해 민주당의 상징인 파랑색, 공화당의 상징인 빨강색을 섞은 보라색을 바이든 캠프의 상징색으로 활용해 왔다. 지난달 20일(현지 시각)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은 ‘통합’을 강조한 바이든 정부의 보라색 의상을 입고 참석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색채 심리학에 따르면 보라색은 몸과 마음의 조화를 원할 때 끌리게 되는 색으로 알려져 있다. 심신이 피로할 때 무의식적으로 찾게 되는 색이며, 숭고하고 신비로운 색으로 보았다. 실제로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픈 시기에는 유난히 보라색을 선호하게 된다든지, 몸이 허약하거나 병약한 사람들도 보라색에 끌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는 신안군의 보라색도 화제다. 신안군에서는 수년전부터 1004라는 숫자와 ‘보라색’ 마케팅을 해왔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벗어나 압해대교로 들어서는 순간 1004섬 로고와 보라색이 보인다. 신안의 버스정류장은 모두 흰색과 보라색을 사용하고 있다.

신안의 보라색의 결정판은 ‘퍼플섬’이다. 안좌도에서 손 닿을 듯이 보이는 반월·박지도까지 놓인 다리가 보라색인 것은 물론이고 마을로 진입하는 집집의 지붕과 창문, 마을 사람들의 의상 심지어 동네 개와 고양이 목줄까지도 보라색이다. 게다가 방문객들이 옷이나 우산 스카프 등 보라색 장신구를 착용하면 입장료가 무료이다.

한때는 황제가 아닌 자가 보라색 옷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잃어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누구나 보라색 옷을 입을 수 있고 보라색 장신구로 장식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세상은 충분히 아름다워진 것이다. 게다가 푸른 바다 위로 놓인 보라색 다리를 건너 보라색 지붕을 인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바다에 인접한 산책로를 따라 사시사철 섬 곳곳에 피고 지는 보라색 꽃을 볼 수 있다. 본래 반월·박지도가 퍼플섬이 된 이유도 섬에서 기르던 보라색 도라지꽃이 섬을 보라색으로 보이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라색 다리 건너 그 섬에 가고 싶다. 바다 위 퍼플 다리를 건너가노라면 바닷바람에 지친 몸과 마음에 평화가 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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