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 5·18부상자동지회 초대 회장, 시인·연극인] ‘주먹밥 공동체’ 5월 정신을 되살려야
2021년 02월 23일(화) 23:10
80년 5월 이후 잠을 이루지 못한 날이 많았다. 잊으려고 할수록 옥죄어 오는 소리.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아들딸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 도청으로 모여 주십시오.” 그 애절한 외침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필자는 두 가지로 해법을 찾아봤다. 그러나 수면제를 먹어도 잠은 오지 않았고, 술을 마셔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한동안 숙면을 해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83년 5월 단식 중인 김영삼 총재를 만나고 안기부·보안대를 섭렵한 그해 가을, 5·18 유족과 결혼한 여동생이 죽었다. 내 자신이 여동생을 죽였다는 죄책감으로 수면제를 몽땅 먹었다. 하지만 죽지 않고 사흘 만에 깨어났다. 건강은 엉망이 됐고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 요즘에 또 불면증이 도졌다.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전화벨 소리. 그렇다고 꺼 놓을 수도 안 받을 수도 없다. 5월 귀신에 붙잡힌 업보인데 어쩌랴.

최근에 대선배님의 전화를 받았다.

“어이 잘 있는가”

“예. 선배님은 건강하신가요?”

“지금은 100미터도 걸을 수가 없네”

“어째야 쓰께라 빨리 좋아지셔야 할 것인디”

“우리가 이제 얼마나 살겠는가? 5·18 동네가 시끄러운께 몸이 더 아프고 전화받기가 징허시”

“아이쿠 죄송합니다”

“광주가 어떤 곳인가? 더 이상 민낯을 보이면 안 되네”

이뿐만이 아니다. 국회의원을 지낸 분부터 친구와 선후배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전화에 동네북이 된 느낌이다. 쑥스럽지만 해명을 하자면 이렇다.(사)5·18민주화운동 부상자회가 조그만 수익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부상자의 명칭이 들어가면 쉽게 될 줄 알고 구속자, 부상자, 기타 등급, 유족들을 묶어서 구속 부상자회가 승인 요청을 했다. 유사한 명칭은 당연히 허가를 해 주지 말아야 하건만, 맙소사…. 보훈처에서 2010년도에 도장을 찍어줘 버린 것이다.

아무튼 최근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된 후 보훈처에서 3개 단체를 방문해 입장을 밝혔다. 세 단체가 주도하여 준비를 하되, 3개 단체에 가입하지 않는 수많은 회원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민주적 과정을 거치도록 하라고. 논란이 될 수 있는 조항이 58조 부칙 2조 3항이다. ‘설립준비위원회에서 구성하여 보훈처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라는 문구다. 그래서 설립준비위원회에서 주도권을 장악해 회장과 임원이 되겠다는 환상을 품은 게 화근이 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회원들과 시민 여론은 이렇다. 첫째, 5·18 단체는 민주화를 위해 싸운 단체이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직선제를 해야 명분이 있다. 둘째, 설립준비위원에 참여한 사람은 차기 회장이나 임원 선거에 출마하면 안 된다.(제척 사유와 객관성) 셋째, 공직선거법에 준하는 선관위 규정을 만들어서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 넷째, 임원의 임기를 2년 또는 3년 단임으로 해야 한다. 다섯째, 도덕성과 지도력과 상징성을 겸비한 사람을 추대하도록 하자.

그래서 하는 말이다. 보훈처가 행정 편의주의에 매몰되거나 눈치만 볼 것이 아니라, 회원들의 의견을 경청하여 기본적인 지침을 전달해야만 혼선을 막을 수 있다. 사랑받는 공법단체가 설립될 수 있도록 보훈처의 배려와 용단이 필요한 이유다.

어디 보훈처만 탓하랴. 아직도 5월은 ‘겨울 공화국’이다. 부끄럽고 참담하다. 5월 단체도 이제 국민들의 뜻이 무엇인가 인식하고 존경받는 공법단체를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5월 영령과 국민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 아닐까? 주먹밥 공동체 5월 정신으로 희망찬 봄을 맞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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