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석 수필가·전 여천고 교장] 이웃과 소통하는 공감 능력
2021년 02월 23일(화) 23:00 가가
날로 인정이 메말라 가고 사회 또한 황폐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주위를 살펴보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나누고 베푸는 인정이 아직 살아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서울역은 하루 유동 인구만 40만 명에 달하여 노숙자들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곳 중의 하나다. 폭설 주의보가 내린 날이었다. 눈이 펑펑 내리는 서울역 앞 광장에서 기자가 찍은 사진 한 장이 ‘감동의 물결’로 다가왔다. 하얀 눈 위의 두 사람이 껴안고 있는 사진이었다. 멀리서 사진을 촬영한 기자가 다가가 자초지종을 물었으나 이미 선행을 베푼 사람은 잠바와 현금 5만 원까지 쥐여 주고 총총히 사라진 후였다. 한 노숙인이 너무 춥다며 커피 한 잔을 부탁하자 길 가던 신사가 선행을 베푼 것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지난해 경기도 용인에서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코로나가 확산하면서 임대료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자 용기를 내어 ‘월세를 10만 원이라도 깎아주시면 많은 힘이 될 것 같다’라는 문자를 임대인에게 보냈다가 다음날 계좌로 100만 원이 입금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렇듯 온정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살 만하다. 선행을 통해 얻는 즐거움은 바로 행복감이다. 남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도 망설여지고 선뜻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조금만 용기를 내면 어려운 이웃을 돕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가진 것이 많아야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좁은 골목길에서 폐지를 주워 살아가는 노숙자의 아픈 마음을 이해하거나 공감력을 키워 나갈 때 사회적 집단 면역도 높아질 것이다. 고급 차를 탈수록 사회적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고 싸잡아 이야기해서도 안 될 일이다. 전망 좋은 집에서 나만의 행복을 꿈꾸는 세상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과 소통하며 자신의 것을 나눌 수 있을 때 인간의 가치는 더욱 빛나는 것이 아닐까.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는 문화 류씨 10대 종가인 ‘운조루’(雲鳥樓)가 있다. 조선 영조 52년(1776년)에 낙안군수 류이주 선생이 지은 99칸짜리 양반 가옥이다. 운조루가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쌀이 세 가마나 들어가는 뒤주 때문이다. 200여 년 된 원통형 뒤주 아랫부분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네 글자가 적혀있다. “누구나 쌀 뒤주를 열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운조루의 주인이 배고픈 사람은 누구든지 와서 뒤주를 열어 쌀을 퍼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운조루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베푼 쌀은 한 해 수확량의 20%나 됐다고 전해진다. 이 뒤주는 호젓한 집 뒷골목으로 들어올 수 있어 길가는 이웃과 마주치지 않는 자리에 뒀다. 동네에서 배를 곯는 사람이 없도록 배려한 것이다. 운조루의 주인이 실천하고자 했던 ‘나눔의 실천’은 이웃과 공존하려는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전형이다.
살다 보면 바쁜 생활 속에서 가끔은 삶이 권태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러한 권태는 우리 주변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깊은 곳을 응시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고 한다. 항상 고요한 마음의 상태 즉, 평정심을 유지하는 비결은 어려운 이웃에 따뜻한 관심을 보일 때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살면서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회적 삶의 추구는 요원할 것이다.
생활을 같이하는 공동체는 서로 기댈 수밖에 없고 나아가 연대해야 한다. 그래야 공동체의 삶이 가능하다.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이 바로 연대의 시작이다. 우리는 지금 서로를 붙들어주고 있는가? 이는 ‘코로나19’가 던진 질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나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거리의 친구들이 건강하고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아야 동네 사람들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 30년 전 한국에 와서 사제 서품을 받고 성남에 있는 ‘안나의 집’에서 빈민사목(貧民司牧)을 하는 이탈리아 출신 김하종 신부의 말씀을 되새길 때가 아닌가 한다.
서울역은 하루 유동 인구만 40만 명에 달하여 노숙자들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곳 중의 하나다. 폭설 주의보가 내린 날이었다. 눈이 펑펑 내리는 서울역 앞 광장에서 기자가 찍은 사진 한 장이 ‘감동의 물결’로 다가왔다. 하얀 눈 위의 두 사람이 껴안고 있는 사진이었다. 멀리서 사진을 촬영한 기자가 다가가 자초지종을 물었으나 이미 선행을 베푼 사람은 잠바와 현금 5만 원까지 쥐여 주고 총총히 사라진 후였다. 한 노숙인이 너무 춥다며 커피 한 잔을 부탁하자 길 가던 신사가 선행을 베푼 것이었다.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는 문화 류씨 10대 종가인 ‘운조루’(雲鳥樓)가 있다. 조선 영조 52년(1776년)에 낙안군수 류이주 선생이 지은 99칸짜리 양반 가옥이다. 운조루가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쌀이 세 가마나 들어가는 뒤주 때문이다. 200여 년 된 원통형 뒤주 아랫부분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네 글자가 적혀있다. “누구나 쌀 뒤주를 열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운조루의 주인이 배고픈 사람은 누구든지 와서 뒤주를 열어 쌀을 퍼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운조루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베푼 쌀은 한 해 수확량의 20%나 됐다고 전해진다. 이 뒤주는 호젓한 집 뒷골목으로 들어올 수 있어 길가는 이웃과 마주치지 않는 자리에 뒀다. 동네에서 배를 곯는 사람이 없도록 배려한 것이다. 운조루의 주인이 실천하고자 했던 ‘나눔의 실천’은 이웃과 공존하려는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전형이다.
살다 보면 바쁜 생활 속에서 가끔은 삶이 권태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러한 권태는 우리 주변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깊은 곳을 응시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고 한다. 항상 고요한 마음의 상태 즉, 평정심을 유지하는 비결은 어려운 이웃에 따뜻한 관심을 보일 때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살면서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회적 삶의 추구는 요원할 것이다.
생활을 같이하는 공동체는 서로 기댈 수밖에 없고 나아가 연대해야 한다. 그래야 공동체의 삶이 가능하다.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이 바로 연대의 시작이다. 우리는 지금 서로를 붙들어주고 있는가? 이는 ‘코로나19’가 던진 질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나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거리의 친구들이 건강하고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아야 동네 사람들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 30년 전 한국에 와서 사제 서품을 받고 성남에 있는 ‘안나의 집’에서 빈민사목(貧民司牧)을 하는 이탈리아 출신 김하종 신부의 말씀을 되새길 때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