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남 광주양산초등학교 교감] 시대가 요청하는 새로운 프레임
2021년 02월 15일(월) 07:00
프레임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전쟁은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소환되었지만, 우리 사회 민주주의 성장 과정에서 과거와 현재의 가치가 지각 충돌하는 측면이 있다. 거대한 프레임 전쟁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라는 책으로 유명한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은 ‘말과 언어’라는 형식과 ‘의미’라는 내용이 강력하게 접착되어 있어, 하나의 ‘생각틀’을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하나의 프레임이 형성되면, 사람은 그 프레임의 구조 안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그 말을 듣는 순간 ‘코끼리 생각’이 확 밀려온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형식이 내용을 강력하게 포획하고, 접착되어 있어서, 분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과연 그렇다면 생각의 틀을 구성하는 ‘말과 언어’는 어떻게 ‘내용과 의미’를 접착시킬까? 코끼리를 말하는데, 고양이를 생각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코끼리는 덩치 큰 초식동물일 뿐 뱀을 상상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말로는 코끼리라 해놓고 뱀을 상상하기를 바라는 언사는 자기도취나 현실감 없는 순진한 상상의 세계일 뿐이다.

말과 언어라는 상징에 내용과 의미가 담겨서 하나의 인지 프레임이 형성되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많은 사회적 역사적 경험이 있어야 한다. 많은 학자들은 이 접착의 강력한 에너지로 도덕이나 사회문화적 역사의 배경이 녹아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한번 형성된 프레임은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정치나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이 프레임을 이해하고, 대체하고, 창조하기 위해서 많은 공을 들인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하나의 프레임이 형성되기까지의 침잠된 사회 역사적 경험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의 논쟁에는 우리 사회 복지 프레임의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 부정 수급이나 퍼주기, 예산 낭비 같은 수혜적인 복지로 도입되었기 때문에, 사회복지라는 건강한 사회의 일반적인 복지 시스템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그래서 가장 강력한 증세의 동력이 되어야 할 사회복지가 경제 효과성을 넘지 못한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국민의 복지 프레임 속에는 보편적 복지가 훨씬 강력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보편 복지 속에는 최소한의 인간 기본권과 행복 추구의 보편적 가치가 담겨있고, 선별 복지 속에서는 경제 효율성의 논리만 담겨있다. 이 논쟁은 당연히 국회 표결 결과와 관계없이 보편 복지가 이긴다. 현명한 정치인이라면 두 개념을 병렬적으로 놓거나, 선택의 문제로 놓을 일이 아니다. 두껍게 보편 복지 정책을 시행하면서, 부분적으로 적절하게 선별 복지를 보완할 일이다. 일국의 곳간 지기가 보편 복지를 전제하지 않고, 선별 복지를 주장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의 복지 프레임의 과제를 웅변해 준다.

2016년 시작된 1년간의 긴 촛불 항쟁은 20차까지의 국민 궐기를 통해서, 부정한 대통령을 퇴진시킨 무혈 시민혁명이었다. 이 촛불 프레임에는 정의와 도덕에 대한 시민적 자각이라는 에너지의 근원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프레임은 사면이라는 프레임으로 대체되거나 승화될 수 없다.

통일의 프레임이 분단의 아픔을 품을 수 있을지, 판사 탄핵이 어떤 성역도 없다는 시대의 가치를 담을 수 있을지, 공정의 프레임이 특권의 구시대적 가치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을지, 지금부터 시작되는 전쟁은 우리 사회의 명운이 걸린 시대가 요청하는 프레임들이다.

프레임 이론이 인식의 명료성과 효율성을 제공하는 미덕이 있음에도 마치, 기술적으로 프레임을 조작하거나 대체할 수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매우 잘못된 해석 같다. 오히려 프레임 이론은 한번 잘못 구성된, 사회·문화·역사·도덕적 프레임들이 너무나 강고하기 때문에 책임성을 요구한다는 측면이다. 그 책임성의 접착 지점에는 항상 건강하고, 열려 있는 사회 비판이 소통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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