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광주예술고 교감] 거리 두기와 간격 띄우기
2021년 02월 02일(화) 23:00
코로나19가 일상을 지배하는 키워드가 된 지도 1년이 지났다. 고강도 방역 대책의 일환으로 병행된 장기간의 사회적 거리 두기는 미증유의 일상 변화를 불러왔고, 계절이 바뀌면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과 기대와 달리 불안과 초조가 심화되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우울감을 뜻하는 ‘블루’(blue)가 결합한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분노(red)로 이어져 ‘코로나 레드’로 가더니, 이제는 회생조차 힘들어 보이는 현실(black)을 마주하는 감정인 ‘코로나 블랙’까지 등장했다.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에서 환한 동이 트기 전에는 반드시 칠흑 같은 어둠이 있다는 자연의 섭리를 떠올리지만, 지난 연말의 위기감이 잦아들 무렵 다시 확산된 최근의 사태는 설 명절을 앞두고 마음을 무겁게 한다. 조만간 고위험 의료기관 종사자, 요양병원 등을 시작으로 백신 접종이 시작되는 만큼 코로나 종식을 기대할 만도 하지만, 변이 바이러스가 꼬리를 물고 감염력과 전파력이 강해지는 추세라니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이렇듯 힘든 시기를 잘 버티고 일어서야 하는데, 자칫 마지막 남은 힘마저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나마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가 버텨낸 힘은 검사·확진(Test), 조사·추적(Trace), 격리·치료(Treat) 등 이른바 3T 역량을 극대화함으로써 코로나19 전파를 신속하게 차단하는 데 있었다고 한다. 특히 여기에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고 ‘사회적 거리 두기’에 자발적으로 동참한 시민들의 성숙한 역량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거리’를 사전에서 찾아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느껴지는 간격’으로 나온다. 또한 ‘거리를 두다’ 하면 공간적 거리보다는 정서적 거리, 즉 서로 마음을 트고 지낼 수 없다고 느끼는 감정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 앞으로는 거리를 두지 말고 지내도록 하자’는 말처럼. 그러니 오해의 소지가 없으려면 ‘거리 두기’보다는 ‘간격 띄우기’가 나을 수 있다.

그러면 상황과 모순되어 보이는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우리 마음속은 어떠할까. 보건복지부가 아기 상어 캐릭터로 유명한 핑크퐁과 함께 제작한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친구를 만나고 싶어도 사랑하니까 거리는 멀리, 거리는 멀리 마음은 가까이 내 친구는 내가 지켜줘요. … 궁금할 땐 전화하기 보고플 땐 영상통화, 가족을 만나고 싶어도 사랑하니까 마음은 가까이, 거리는 멀리 마음은 가까이 내 가족은 내가 지켜줘요.”

단군신화가 보여주듯 배달민족은 태초부터 자가 격리에 익숙하다는 유머는 고립 공포감을 뜻하는 현대 사회의 ‘FOMO(fear of missing out) 신드롬’이 우리와는 멀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거미줄 같은 복잡한 사회관계망 속에서 나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의식하며 좇기 바쁜 것이 현대 사회이다 보니, 지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SNS로 실시간 공유하게 되면서 자신만 소외되고 있는 건 아닐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FOMO 증후군이라고 한단다. 그러나 우리는 ‘거리 두기’라는 표현 속에 ‘간격은 띄우되 마음은 더 가까이’하는 배려와 정서적 친근감을 담아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인내심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안다. 모두의 고통과 아픔을 긍정 에너지로 승화하는 노력 뒤에는 많은 경제적 손실과 불편함이 수반된다는 사실을. 하지만 코로나19는 우리의 사적인 행위조차 타인의 생명과 밀접하게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기에, 공간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것은 나 자신만이 아니라 친구·가족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길임을.

봄을 기다리는 시간,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오늘이다. 방역을 위한 실천에는 ‘나’가 중심에 있지 않다. 그러기에 ‘간격 띄우기’를 통한 혼자만의 세계를 우리는 거부한다. 도리어 정서적 거리감이 함축된 용어인 ‘거리 두기’를 통해 역설적으로 사회적 연대를 강조하는 우리의 마음에는 1차 대유행 당시 대구에서 사투를 벌였던 한 간호사의 호소가 배어 있다.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내가 곧 너이고, 네가 곧 나인 듯 서로를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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