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펜칼럼-최영태 전 전남대 인문대학장대학] 서열제의 완화와 초중등 교육 정상화
2021년 01월 27일(수) 07:00

최영태 전 전남대 인문대학장

초중고 학생들이 입시 지옥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나라도 독일처럼 대학 서열 구조를 타파하고 대학 평준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필자도 이런 주장에 원칙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 우리나라에서 독일식의 대학 평준화를 시도하는 것은 어렵다. 그 이유는 첫째, 독일은 거의 모든 대학(약 95%)이 국립(주립)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사립대학의 비율이 약 75% 수준이며,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다. 둘째, 독일은 지역 균형 발전과 지방분권이 매우 잘 되어 있다. 인구 8000만 명이 전 국토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인구의 50%가량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셋째, 독일은 대학 지원자가 고등학교 졸업자의 약 35% 내외로서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학생에게 투자하는 교육비가 그만큼 많으며, 상향식 평준화가 가능하다. 반면 우리나라의 대학 수준과 학생 1인당 교육비는 천차만별이다.

사정이 이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대학의 서열구조를 이대로 놔두고는 그 어떤 입시 정책도, 초중등 교육의 정상화도 성공하기 어렵다. 어떤 형태로든 대학 서열 구조를 완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는 대학 서열 구조의 완화책으로 다음 두 단계 과정을 제안한다. 첫 번째 단계는 수도권 소재 국공립대학(서울시립대, 인천대, 서울과학기술대학)과 지역 거점 국립대학 9개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이들을 공동 네트워크 속에 묶어서 공동 학위를 수여하는 것이다. 이 정책의 목표는 서울 소재 중상위권 대학(성균관대, 한양대, 이대, 서강대, 외대 등)과 대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 입시 정책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서울대 외에도 수도권 소재 10여 개 중위권 사립대학들이다. 이들 대학 중 일부를 어떤 형태로든 국립대학 네트워크 속에 포함해야 대학 서열 구조 완화와 평준화라는 목표에 다가설 수 있다. 그래서 두 번째 단계로 필요한 것은 수도권 소재 중위권 사립대 중 5개 이상을 국공립대학 공동 네트워크 속에 포함시키는 노력이다. 이를 위해 국공립대학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사립대학에는 국공립대 수준의 재정적 지원을 한다. 지방 소재 사립대학 중에서도 경쟁력이 있는 대학 몇 개를 이 프로그램에 추가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서울대의 참여 여부도 2단계 과정에서 결정하는 게 현실적이다. 서울대 폐지론이나 지방 이전론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이렇게 지역 거점 국공립대학 9개와 수도권 소재 국공립대학 3개 및 사립대학 5개, 지역 소재 사립대학 5개 등 총 23개 내외를 공동 학위제 네트워크에 포함한다면 사실상 절반 이상의 대학 평준화가 이루어진다. 만약 이렇게만 된다면 이들 공동 네트워크 대학들이 대입정책에서 서울 소재 10여 개 사립대학을 대신하여 주도적 역할을 행할 수 있다. 당연히 대학 입시를 둘러싼 경쟁도 크게 완화될 것이다. 지방 출신 수험생의 ‘인(in) 서울’ 현상도 완화될 것이다. ‘인 서울’ 현상이 완화되면 국공립대학 공동 네트워크에 포함되지 않는 다른 지방대학들도 신입생 모집 등에서 큰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지역 대학에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모든 국민이 공감하는 일이지만 초중등 교육의 정상화는 초중등학교 자체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또 입시 정책의 개선도 기존의 외적 환경을 그대로 놔둔 채로는 한계가 있다. ‘풍선효과’라는 말처럼 입시 정책을 수없이 바꾸었지만, 백약이 무효였던 과거사가 이를 잘 말해준다. 이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대학의 상향식 평준화를 통한 대입 경쟁 완화와 초중등 교육의 정상화가 필요하다. 교실 안에서는 혁신이, 교실 밖에서는 교육 혁명이 필요하다.

23개 내외의 대학을 상향식으로 평준화시키는 데 소요되는 예산은 약 2조~3조 원 정도가 될 것이다. 대입 진학을 위한 과도한 경쟁, 이로 인한 초중등학교 공교육의 파행, 학부모들의 높은 과외비, 그리고 국가적 재난에 가까운 저출산율 등을 고려한다면 이 정도 예산을 투입하는데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교실 밖의 교육 혁명을 위한 정치권의 결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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