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구태 조선대 법사회대학 공공인재법무학과 교수] 유언에도 지켜야 할 법칙이 있다
2021년 01월 21일(목) 23:30

정구태 조선대 법사회대학 공공인재법무학과 교수

A씨는 몇 년 전 배우자를 먼저 여의고 나서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재산을 복지재단에 기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A씨는 백지 위에 직접 “나 A는 남은 모든 재산을 ○○복지재단에 기부합니다” 라고 쓰고 이름과 연월일, 집 주소를 적은 뒤 사인하여 보관해 두었다. 그런데 A씨가 세상을 떠난 후 유산은 복지재단에 기부되지 못하고 두 자녀에게 똑같이 나누어 상속되었다. 왜 그랬을까?

유언이란 유언자가 자신이 사망함과 동시에 일정한 법률 효과를 발생시키기 위해 법률이 정한 방식에 따라 의사를 표현하는 행위이다. 민법은 유언 규정을 통해 유언자가 사후에도 자기 소유의 재산을 생전의 의사에 따라 처분할 수 있도록 인정하고 있다. 이는 민법 기본 원리 중 하나인 사적 자치의 원칙에 기반을 둔다. 사적 자치의 원칙은 개인이 자기의 법률 관계를 그의 자유의사에 따라 형성하는 것을 인정하는 원칙이다. 여기에는 법률 행위 자유의 원칙(계약 자유의 원칙), 소유권 자유의 원칙 등이 포함된다.

유언이 성립하려면, 먼저 개인이 임의로 재산을 처분할 수 있도록 사유 재산 제도가 인정되어야 한다. 재산을 국가나 사회만 소유할 수 있다면, 유언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유권 자유의 원칙이 적용되는 이유이다. 또한 유언이 자유롭게 행해지려면 유언자가 일반적 행동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 일반적 행동의 자유는 재산권 및 행복 추구권에서 파생되는데, 이는 헌법상 기본권에 해당한다. 이는 법률 행위 자유의 원칙과 이어진다. 이러한 기본적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유언자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후에도 재산을 처분하는 유언의 자유 자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법은 개인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사적 자치의 원칙과 함께, 실질적 평등을 구현하려는 사회적 형평의 원칙도 고려한다. 남겨진 유언이 없거나 유언의 효력이 없는 경우 적용되는 상속 제도는 사회적 형평의 원칙을 좀 더 적용하여, 남은 가족들에게 유산이 적절히 배분될 수 있도록 조정한다. 앞에서 예로 든 사건에서 A씨의 유언은 그 효력이 발생되지 않아 상속법에 따라 유산이 자녀들에게 똑같이 나누어졌다. A씨가 작성한 유언장이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유언의 효력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언은 민법이 정한 요건이나 방식을 정확히 지켜야만 효력이 인정된다. 그 요건이나 방식이 조금만 어긋나도 유언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무효가 된다. 이를 ‘유언의 요식성’이라고 한다. 왜 그럴까? 유언자가 사망한 후에야 유언의 효력이 발생하므로 유언이 실제로 있었는지 없었는지, 유언이 있더라도 그것이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법은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히 하고, 그로 인한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해 유언의 방식을 자필 증서, 녹음, 공정 증서, 비밀 증서, 구수 증서 등 다섯 가지로 엄격하게 규정한다.

이 중 유언자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방식은 자필 증서 유언이다. 앞서 A씨가 남긴 유언도 이에 해당한다. 자필 증서 유언은 문자를 알고 쓸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유언장을 공적으로 보관하는 제도가 특별히 없어 유언장을 분실하거나 유언장이 은닉 또는 위조될 우려도 크다. 또 유언 내용이 불명확하거나 때로는 서로 상반되어 진실성을 둘러싼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많다. 이 때문에 자필 증서 유언은 다른 유언 방식에 비해 그 요식성이 더욱더 엄격하다.

자필 증서 유언은 유언자가 전체 문장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모두 직접 쓰고 날인해야만 효력이 있다. 유언자가 서명만 하고 날인을 하지 않았다면 설령 유언자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데 문제가 없더라도 무효이다. A씨의 유언장이 무효가 된 이유도 이 요건 때문이다. 날인은 꼭 도장으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손도장, 즉 무인(拇印)도 허용되며 반드시 유언자 본인이 할 필요도 없다. 날인에는 자필 증서가 단지 유언의 초안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확정된 유언임을 담보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즉 날인을 통해 이 유언이 최종 유언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법이 유언장에 날인을 요구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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