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다 괜찮아질 거야” 황새가 전하는 희망
2021년 01월 11일(월) 08:00

명현관 해남군수

새해의 첫머리, 러시아에서 날아온 황새 한 마리가 아침을 깨운다. 코로나로 인해 긴장하며 보낸 연말연시의 시름이 잠시 잊혀지고, 빙그레 미소가 그려졌다.

지난 5일 국립생태원은 러시아에서 구조된 황새가 한반도의 최남단 땅끝 해남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했다. 지난해 6월 극동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지역에서 탈진한 상태로 발견됐던 어린 황새는 현지 재활센터에서 회복 과정을 거쳐 8월 방사됐다.

가락지와 위치추적시스템(GPS)을 통해 추적한 결과 이 황새는 러시아에서 두만강과 한반도 북부, 전북 김제를 거쳐 날씨가 추워지면서 지난해 12월 말 해남으로 이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건강하고 늠름한 개체로 성장해 해남에서 월동 중인 황새 무리와도 잘 어울려 먹이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로 우울한 마음이 한순간에 가시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러시아와 한국의 황새 보호를 위한 공동 연구와 국제 공조가 결실을 거둔 것을 우선 축하하고 싶다. 날로 기후변화가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구 생태계 보전과 환경의 문제는 어느 한 나라,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자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199호로 지정된 황새는 전 세계적으로도 3000여 마리 밖에 남지 않은 희귀 새이다.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러시아 황새와 함께 우리 군에서 올해 18마리가 관측되었다고 하니 해남에서 꽤나 많은 개체의 황새가 겨울을 나고 있는 셈이다.

귀하신 몸께서 한겨울을 보낼 장소로 택한 해남은 겨울철이면 수십만 마리의 겨울 철새들이 찾는 천혜의 철새 도래지이다. 전국에서 가장 넓은 농경지와 친환경 인증 면적, 고천암호와 영암호의 풍부한 수량, 공장 굴뚝이 없는 청정한 자연환경이 철새들에게는 낙원과도 같은 곳이다. 겨울 진객인 철새떼가 수십만 마리씩 어우러져 그려내는 군무는 ‘고천후조’(庫千候鳥, 고천암호의 겨울 풍경과 철새 군무)라 하여 해남 팔경의 하나로도 꼽히고 있다.

코로나 시대, 사람이 비우니 자연이 채운다는 말이 있다. 사람간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게 되면서 자연은 오히려 더 가까워졌고, 더 생생하게 본연의 모습을 회복해 간다. 우리가 코로나를 겪으며 얻은 교훈이 있다면 위기가 커질수록 서로에게 용기를 주고, 어려운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선한 마음은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믿음일 것이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해남군 또한 대한민국 청정 일번지로서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도 되었다.

청정한 자연환경에서 자란 해남의 깨끗한 농수산물들은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먹거리로 주가를 올리고 있다. 해남군에서 직영하는 온라인 쇼핑몰 ‘해남 미소’는 지난해 최초로 매출 100억 원을 돌파해서 비대면 시대, 농수산물 마케팅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머나먼 하늘길을 날아온 어린 황새가 모든 생명을 품어 온 해남 땅에 깃들 듯 해남의 건강한 자연과 먹거리가 국민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고 있는 것이다.

“새해에는 더 나아질 것이다. 모두 괜찮아질 것이다”며 황새가 우리에게 전해준 희망의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황새는 본래 우리나라에서도 자생하던 텃새였다고 한다. 1970년을 마지막으로 야생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 1996년부터 국내 황새 복원·증식 연구가 진행돼 올해는 드디어 황새를 전국 각지에 방사하는 사업이 추진된다. 해남은 전국 5개 방사지 중 한 곳으로 지정돼 국내 황새를 분양받기로 했다.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내년에는 다시 찾아온 러시아 황새와 국내 복원 황새가 만나 땅끝 하늘을 함께 날아다니는 광경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이 그렇듯 황새 또한 해남의 기운을 듬뿍 받고, 건강하게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덧붙이자면 서양에서는 황새가 아기를 물어다 주는 새라는 설화가 있다고 한다. 인구가 점점 줄고 있는 농어촌 지자체에 가장 반가운 의미를 가진 새가 아닐까 싶다. 황새가 해남에 물어 온 것은 무엇일까? 황새가 불러일으킬 나비 효과를 기대하며 잠시 즐거운 상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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