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죽지 않는’ 새해가 되길 희망하며
2021년 01월 05일(화) 23:00

한국환 강운교회 장로

지난해는 ‘코로나19’로 시작됐지만 결국 종식되지 못하고 올해도 확산되고 있으니 큰 걱정이다. 국내 사망자가 1000명을 넘어섰고, 전 세계 사망자는 185만여 명에 이르고 있으니 참으로 글로벌한 재앙이다. 지금 우리 인류는 역사상 전혀 가보지 못한 초유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지난해 국내의 가장 큰 이슈는 정치적으로 소위 ‘추·윤 격전’이었고 사회적으로는 ‘일하다 죽지 않게’였다. 그동안 우리는 방역에서 모범 국가로 자리매김했으며 경제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한국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처음으로 이탈리아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어 G7 국가를 초월한 첫 사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세상의 일들은 음양(陰陽)이 있는 것으로, ‘K-방역’으로 세계에서 찬사를 받은 것과는 달리 산업 현장 노동자의 많은 희생은 큰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그 산업재해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은 결국 돈(비용)이 문제의 핵심이다. 사용자가 최대의 수익을 위해 노동자의 신체 위험과 생명을 소홀히 하여 안전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결과물이다.

지난해 10월, 과로사로 사망한 40대 택배 기사의 사연이다. 그는 배송 중 호흡 곤란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사망했다. 평소 건강했고 택배 기사로서 20년 경력을 쌓았지만 경제적으로는 어려웠다. 그의 일상은 6시에 기상해 밥을 허겁지겁 먹고 6시 30분에 출근하여 밤 8~ 9시쯤 퇴근하는 것이었다. 어떤 날은 9시가 훨씬 넘어 퇴근해 씻고 자는 시각은 자정이 다 되었다. 그는 폐지 줍는 아버지, 장애가 있는 동생의 생계를 챙기고 있었다. 하루에 적게는 300개 많게는 400개를 배송했으며 밥 먹을 틈조차 없어 김밥을 먹으며 운전했다고 한다. 또한 사업주의 요구로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을 했기 때문에 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이는 사업주가 노동자의 생존권을 빼앗는 일로써 우리나라의 산재 사망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20년 이상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의 장례식 때, 회사는 아무런 물질적 비용 지원 없이 숟가락 젓가락 몇 개 주고 갔다고 한다. 그의 부친은 “택배 기사 죽는 것이 우리 아들이 마지막이 되게 해 달라”고 울부짖었다. 또 어떤 택배 기사는 퇴근하면 새벽 5시가 되어 밥 먹고 씻고 한숨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나와서 또 물건을 정리했다고 한다. 이러한 열약한 근로 여건 속에 지난해 12월 말까지 20명에 가까운 택배 기사들이 숨졌다.

그들은 이처럼 인간다운 대접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런데 대부분 사망자 유서엔 “저 너무 힘들었어요”라는 말이 많았다. 대부분 심혈관 질환으로 숨져 과로사로 추정된다. 연간 2000명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산업재해 사망자는 영국과 독일의 5배, 일본의 3.5배로 심히 수치스러운 일이다.

산업재해로 인한 이 같은 희생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 안전보다 기업 이윤을 더 중시하여 기본적인 안전·보건 관리에 소홀하며, 두 명 이상이 해야 할 업무를 한 사람에게 강요하는 등 대부분 인재(人災)의 성격이다. 그런데 노동자가 많이 죽어도 제대로 처벌받는 사업주는 없다. 이는 정부의 엄격한 현장 확인·감독에 대한 책임도 아주 크다. 정부와 택배 회사들이 분류·배송 인력 투입 약속을 했으나 현장에서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전태일 사후 50년이 지나도록 근로기준법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현대의 사회적 컨센서스다. 이제는 일하는 현장이 전쟁터나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안전하고 보람된 삶의 장이 돼야 한다. ‘동물 복지’까지 주창하는 시대에 인간의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나라가 어찌 선진국 대열을 운운할 수 있겠는가? 경제활동을 가장 열심히 하는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아 가는 일이 더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우리의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 권에 이른 지금, 성장을 넘어 ‘생명의 가치가 존중받는 경제’를 고민해야 한다. 새해에는 ‘코로나19 종식’과 함께 ‘일하다 죽지 않게’라는 처절한 목소리가 사라지는 원년을 만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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