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한 톨의 달관
2020년 12월 29일(화) 07:00

송혁기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1730년, 금성 현감 이형곤(李衡坤)이 정자를 하나 지었다. 사방이 툭 트여서 수십 리 경치를 한눈에 끌어당겨 볼 수 있는 곳이다. 막힘 없이 볼 수 있다는 뜻에서 ‘달관정’(達觀亭)이라는 이름을 붙인 뒤 조귀명(趙龜命)에게 기문(記文)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조귀명은 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으로 보는 것이 다르다는 데에서 논지를 시작한다. 사방이 트인 정자에서도 문을 닫으면 눈으로는 가까이 있는 사물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지척의 사물밖에 없다고 해서 마음의 시야마저 줄어드는 것은 아니며, 시력 닿는 만큼 멀리까지 보인다고 해서 마음의 시야까지 저절로 커지는 것도 아니다.

달관이란 매인 데 없이 자연에 은거하는 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기는 이들은, 현감으로서 공무에 바쁜 이형곤이 내세울 말이 못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정적이고 한가한 때에만 그러할 뿐 동적이고 바쁜 상황에는 대처하지 못한다면 이는 상황에 매이는 것이니 달관이라 할 수 없다. 자연에 머무를 적에는 물고기나 새와 어울리며 느긋하게 즐거움을 누리고, 관아에 나와서는 어려운 백성들의 호소에 신속하고 적절하게 응해야 달관이라 할 수 있다. 상황의 막힘과 통함에 구애되지 않고 복잡한 정치 현장이나 심지어 위험한 전쟁터에서도 간결함과 평안함을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달관이다. 눈에 보이는 상황을 넘어서 마음으로 보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1801년 어느 저녁, 산책하던 정약용(丁若鏞)이 우연히 한 어린아이를 보았다. 그 아이는 참새처럼 팔짝팔짝 뛰며 배를 송곳으로 찔리기라도 한 듯이 자지러지는 소리로 울어 대고 있었다. 왜 그러느냐고 묻자, 그 아이가 밤 한 톨을 주웠는데 어떤 사람이 그걸 빼앗아 가서 저렇게 울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약용은 이 이야기를 두 아들에게 전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아아! 천하에 이 어린아이처럼 울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벼슬 잃은 자, 권세 잃은 자, 재산 잃은 자 역시 달관한 사람의 눈으로 본다면 밤 한 톨 잃은 아이와 뭐가 다르겠는가?”

내가 잃은 것이 밤 한 톨과 다를 바 없다는 달관의 시선이 과연 우리에게 위안이 될까? 정약용이 이 이야기를 한 맥락은 다른 데에 있었다. 형체가 있는 재물은 미꾸라지와 같아서 단단히 잡으려 하면 할수록 더 미끄럽게 빠져나갈 뿐이다. 재물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남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 쓰는 재물은 유형의 물질이고 남에게 베푸는 재물은 무형의 마음이다. 물질은 향락과 함께 망가지고 없어지지만, 마음은 변치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내가 가진 재물은 도난과 화재를 늘 걱정해야 하지만, 남과 나눈 재물은 아무런 염려도 없이 좋은 이름으로 영원히 남는다. 이런 관점의 전환 위에서 비로소 밤 한 톨의 달관을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세상만사에 초탈한 듯 보이는 이에게 ‘달관’이라는 칭호를 붙이곤 한다. 그런데 인생의 진리를 꿰뚫어 보는 식견을 갖추어서 보통 사람과는 다른 차원에 오른 이를 존경스럽게 가리키기보다는, 대책 없이 무심하고 의욕이 없는 이를 다소 폄하하는 어투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절망적인 미래를 냉정하게 인정하고 그저 현실에서 누릴 수 있는 작은 것들에 만족하며 사는 일본의 젊은 세대를 가리키는 ‘사토리(さとり) 세대’를 ‘달관 세대’로 옮긴 예도 있다. 하지만 회피와 포기마저 허용될 수 없을 만큼 냉혹한 현실 앞에서 달관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눈에 보이는 것이 너무 커서 달관이라는 말을 사용하기조차 조심스러워진다.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많은 올해 연말이지만, 인적 드문 거리에 구세군 자선냄비마저 쓸쓸해 보이는 초유의 비접촉 시대를 살고 있다. 너나없이 힘겹고 불안한 상황. 모든 이슈가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양분되는 광포한 흐름 가운데, 근근이 이어 온 삶의 끈을 놓아 버리는 이들의 소식이 안타깝게 들려온다. 재물에 연연하지 않고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달관이란 우리와는 너무도 먼 이야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재물은 나누어야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는 역설, 눈에 보이는 상황을 넘어서 마음으로 무언가를 볼 수 있다는 믿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달관은 밤 한 톨처럼 작은 관점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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