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트럼펫
2020년 12월 28일(월) 06:30
“마지막 트럼펫 소리가 울리고, 우리가 돌무덤 속에 누워 있을 때, 나는 당신에게 돌아누우며 속삭일 거야. ‘로비, 로비. 우린 저 소리 못 들은 거야’라고.” 오스카 와일드의 무덤에 쓰인 이 묘비명(墓碑銘)은 누군가 ‘죽음’에 대해 물을 때마다 오스카가 농담처럼 말해 왔던 이야기를 옮겨 놓은 것이다.

‘심판의 날’을 묘사한 요한계시록에는 일곱 명의 천사가 일곱 개의 트럼펫을 차례로 부는 장면이 나온다. 묘비명에 쓰인 ‘마지막 트럼펫’은 ‘세상을 멸망시킬 재앙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바로 그 트럼펫이다.

오스카는 천재적인 작가답게 세상이 멸망하는 순간, ‘돌무덤 속에 함께 누운 세 살 연상의 동성 애인 로비에게 몸을 돌려 속삭이는 다정한 모습’을 통해 ‘죽음보다 깊은’ 자신의 진심을 드러낸 것이다. 오스카가 ‘동성연애’ 죄로 무려 2년간이나 감옥살이를 한 뒤 영국에서 추방돼 프랑스 파리에서 비참한 삶을 마쳐야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묘비명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이라는 영국 언론의 평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전 세계에서 ‘성 소수자’를 상대로 진행되어 온 ‘가혹하고도 무차별적인 박해’는 그러나 최근 들어 점차 사라져 가는 듯한 모습이다. 특히 지난 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이미 커밍아웃한 바 있는 동성애자 피트 부티지지를 교통장관으로 발탁하면서 그 같은 추세는 더욱 가속되는 느낌이다.

민주당 후보 경선 당시 바이든의 라이벌이기도 했던 부티지지는 지난 2015년 사우스벤드트리뷴이라는 지역신문 칼럼을 통해 자신이 게이(gay)라는 사실을 밝혔었다. 그는 당시 “(그런 단순한 사실이) 나의 갈색 머리칼처럼 삶의 진실이며 나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고 인정하기까지 수년간 갈등과 성장의 시간이 필요했다”면서 “성 소수자라는 사실은 내가 문서나 총을 다루거나 회의를 주관하고 고용을 결정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성 소수자를 비롯해 ‘단순히 남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박해받는 세상의 모든 이들을 위해 새해는 모든 차별과 억압이 사라지는 원년이 되길 기원한다.

/홍행기 정치부장 redplan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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