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2020년 12월 20일(일) 21:15 가가
누구나 좋아하거나 인연이 있는 숫자가 있다. 정약용 선생은 1818년 유배에서 풀려나기까지 18년 동안 18명의 제자를 배출하는 등 유독 18이란 숫자와 연관이 있었다고 한다. 다산보다는 못해도 우리가 살면서 9라는 특정 숫자가 징크스가 되거나 7은 행운으로 다가오는 경우처럼 이런저런 숫자와 인연이 있게 마련이다. 나에게 19라는 숫자 역시 통과 의례나 사회적 환경으로, 때론 배경으로 영향을 주었거나 심지어 전환점이 된 때도 없지 않다.
19는 성인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할 길목이었다. 의지에서 독립으로, 객체에서 주체로, 방종에서 자유로 넘어가는 시기이기에 부족사회에서는 성인식을 엄격하게 치른다. 80년대는 꿈보다 방황, 자유보다 억압, 희망보다 불안과 우울이 더 많았던 시대였다. 그래서 강단보다 거리에서, 대학 교재보다 금서에서, 지상보다 지하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던 시대였고, 열아홉은 늘 취업과 사회 문제라는 두 길목에서 이기적 선택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살았던 때였다.
막걸리와 화염병이 벚꽃보다 더 화려하게 거리를 수놓은 시절, 어쩜 낭만적 사랑보다 더 치열하게 민주주의를, 나보다 우리를 먼저 내세우던 때였다. 나 역시 그 청춘들처럼 취업과 민주화의 틈새에서 비틀거리면서, 혼자 일어서고 함께 사는 것을 고민한 것도 이 숫자를 대하면서부터였다. 스님이 오랜 면벽 끝에 성불하듯 어린 나를 죽이고 새로운 나를 만들어 비상하기 위해 변태에 변태를 거듭하도록 나를 깨우치는 숫자였다.
19는 나를 마구 흔들어 댔다. 19 하면 대폿집 달력의 야릇한 그림이 떠오른다. 몰래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면서 친구와 극장에 들어가 에로틱한 영화를 보곤 했다. 광주항쟁이 막 지나간 다음 해였던지라 19는 정신적 영혼보다 육체를 먼저 깨운 숫자여서 3S 정책(스포츠·스크린·섹스)에 나도 마냥 흔들렸다. 방황, 격정, 청춘… 그래서인지 19는 멋지거나 아름다운 그림보다 흉터나 화인으로 남은 숫자이다. 19는 아무 준비도 없는 나를 금기의 바다로 거칠게 내몰았다. 나 역시 주체성도 없이 호기심만으로 무작정 바다를 항해했던 시기였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문득 어두운 터널이 끝났고, 훌쩍 성숙해졌다는 것이다.
난 운이 좋게도 열아홉 녀석을 여럿, 그것도 자주 만났다. 19세가 된 고3 녀석들이다. 18세까지 거칠고 포악스러운 녀석들이 19라는 숫자에 짓눌려 신기하리만큼 순해졌다. 야생마처럼 날뛰던 녀석들도 서서히 대학 입학을 앞두고 차분해진다. 녀석들은 여느 때보다 부지런히 미래를 설계하고 어둠보다 빛을 찾는다. 장래에 연연하지 않고 당당하게 꿈을 찾아 도전하는 19세들, 코로나19의 제일 큰 피해자임에도 당당하게 전진하는 그들은 늘 나에게 즐거움과 용기를 주었다.
19를 뒤집으면 91이 아니라 61이다. 61은 두 번째 19이다. 제2의 사춘기이자 다시 찾아온 청춘. 61은 갑이다. 타인에게 갑이 아닌, 나 자신에게 갑이 되어야 하는 출발점이다. 자유가 아닌 절제를, 주체라기보다 물러설 줄 아는 관망을, 독립이라기보다 겸손을 익혀야 하는 늦가을 어디쯤이다. 19가 육체적으로 성숙한 전환점이었듯이 61은 정신적으로 더욱 깊어져야 하는 변곡점임이 분명하다. 지금까지 삶과 달리, 두 번째 청춘은 나를 먼저 버리고 비워야 한다.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 진정 내적인 사유로 자유를 얻는 시작점이어야 한다. 1과 9는 시작과 끝의 숫자이자 둘을 합치면 10이라는 완성의 숫자가 아닌가.
내가 좋아하는 친구 일구는 유독 술을 좋아한다. 누가 19 아니랄까 봐 영화나 TV도 19금(禁) 아니면 보지 않는다. 난 지금 무등산이 훤하게 보이는 19층에 산다. 송정역을 갈 때면 집 앞에서 19번 버스를 탄다. 이처럼 수많은 19는 내 주변에서 나를 흔들거나 이끌기도 했으며 나를 일깨우기도 했다.
작년은 2019년이었다. 내게 마지막 19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만날 19는 그리 많지 않을 성싶다. 2119년까지 산다는 것은 기적이지만 살아갈 세월이 19년이 더 된다는 것도 보장할 수 없다. 바란다면 19일 전에 내 죽음을 알게 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것도 욕심이다. 어쩜 19초 전은 혼수상태에 있지 않을까.
19는 내가 세상을 엇나갈 때마다 중심을 잡아 주고, 앞서가거나 뒤처지면 삶의 보폭을 조정해 주었다. 무엇보다 다양한 19가 내 삶을 단편적이거나 획일적으로 살지 않고 다초점 시각으로 살도록 하였으며, 삶의 자세를 건강하게 잡아 주는 친구이자 앞길을 안내해준 스승이었던 것 같다.
혹여 다시 19가 찾아온다면 불행한 19일지라도 환하게 웃으며 맞이하고, 행복한 옷으로 입히고 싶다. 달관까지는 못해도 최소한 마음자리는 곱게 정돈해야지 싶다.
난 운이 좋게도 열아홉 녀석을 여럿, 그것도 자주 만났다. 19세가 된 고3 녀석들이다. 18세까지 거칠고 포악스러운 녀석들이 19라는 숫자에 짓눌려 신기하리만큼 순해졌다. 야생마처럼 날뛰던 녀석들도 서서히 대학 입학을 앞두고 차분해진다. 녀석들은 여느 때보다 부지런히 미래를 설계하고 어둠보다 빛을 찾는다. 장래에 연연하지 않고 당당하게 꿈을 찾아 도전하는 19세들, 코로나19의 제일 큰 피해자임에도 당당하게 전진하는 그들은 늘 나에게 즐거움과 용기를 주었다.
19를 뒤집으면 91이 아니라 61이다. 61은 두 번째 19이다. 제2의 사춘기이자 다시 찾아온 청춘. 61은 갑이다. 타인에게 갑이 아닌, 나 자신에게 갑이 되어야 하는 출발점이다. 자유가 아닌 절제를, 주체라기보다 물러설 줄 아는 관망을, 독립이라기보다 겸손을 익혀야 하는 늦가을 어디쯤이다. 19가 육체적으로 성숙한 전환점이었듯이 61은 정신적으로 더욱 깊어져야 하는 변곡점임이 분명하다. 지금까지 삶과 달리, 두 번째 청춘은 나를 먼저 버리고 비워야 한다.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 진정 내적인 사유로 자유를 얻는 시작점이어야 한다. 1과 9는 시작과 끝의 숫자이자 둘을 합치면 10이라는 완성의 숫자가 아닌가.
내가 좋아하는 친구 일구는 유독 술을 좋아한다. 누가 19 아니랄까 봐 영화나 TV도 19금(禁) 아니면 보지 않는다. 난 지금 무등산이 훤하게 보이는 19층에 산다. 송정역을 갈 때면 집 앞에서 19번 버스를 탄다. 이처럼 수많은 19는 내 주변에서 나를 흔들거나 이끌기도 했으며 나를 일깨우기도 했다.
작년은 2019년이었다. 내게 마지막 19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만날 19는 그리 많지 않을 성싶다. 2119년까지 산다는 것은 기적이지만 살아갈 세월이 19년이 더 된다는 것도 보장할 수 없다. 바란다면 19일 전에 내 죽음을 알게 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것도 욕심이다. 어쩜 19초 전은 혼수상태에 있지 않을까.
19는 내가 세상을 엇나갈 때마다 중심을 잡아 주고, 앞서가거나 뒤처지면 삶의 보폭을 조정해 주었다. 무엇보다 다양한 19가 내 삶을 단편적이거나 획일적으로 살지 않고 다초점 시각으로 살도록 하였으며, 삶의 자세를 건강하게 잡아 주는 친구이자 앞길을 안내해준 스승이었던 것 같다.
혹여 다시 19가 찾아온다면 불행한 19일지라도 환하게 웃으며 맞이하고, 행복한 옷으로 입히고 싶다. 달관까지는 못해도 최소한 마음자리는 곱게 정돈해야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