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심리적 방역을
2020년 12월 17일(목) 23:30 가가
아침에 교문에서 아이들을 맞이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이들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하나하나 표정을 살핀다. 표정이 밝은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더불어 밝아지고 인사를 건네도 시원찮은 반응과 지친 모습을 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혹시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었을까? 아침은 제대로 챙겨서 먹었을까?’ 등등.
올해 들어서 코로나19로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영 말이 아니다. 표정이 갈수록 어두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거리 두기로 인해 교실에 가면 짝꿍도 없이 한 명씩 떨어져 앉아 온종일 생활한다. 점심 시간에도 칸막이가 있는 식탁에서 한 방향만 바라보며 조용히 식사한다. 특별실 활동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더구나 소풍이나 수련회, 수학여행 같은 체험 학습은 물론이고 체육대회도 모두 취소되었다. 그뿐인가? 무대에 한 번 오르기 위해서 친구들과 그토록 경쟁하며 애쓰는 축제도 할 수 없는 처지다. 이러니 학교에서 무슨 흥이 나고 재미가 있겠는가.
아무리 코로나19 때문이라지만 너무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 감출 수 없다. 아이들이 한없이 안쓰럽다. 그리고 미안하다. 이런 아이들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풀어줄 방안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청소년 단체에서 한 가지 제안을 해왔다. ‘찾아가는 쉬는 시간 힐링 콘서트’를 해 주겠다고 말이다. 올해는 축제를 열지 못할 처지인지라 오히려 학교가 간절히 원하고 있던 바였다.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일정을 잡고 인근 학교에도 적극 권했다. 학교에 전혀 부담을 주지 않고 아이들은 공연을 보고 즐기기만 하는 무대이다. 코로나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소규모로 1·2부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가뜩이나 정서적으로 힘들고 위축된 우리 아이들에게 잠시나마 기분 전환하며 힐링하는 기회를 마련했다는 기쁨이 컸다. 시작부터 아이들이 좋아하는 환상적인 댄스가 펼쳐졌다. 마술 공연, 색소폰 연주, 노래 등으로 짧지만 알찬 무대였다.
그런데 아이들의 반응은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띄엄띄엄 떨어져 앉은 탓도 있겠지만 표정이 굳어 있다. 작년 축제 때 모습을 보더라도 이럴 아이들이 아닌데 말이다. 코로나 블루라고 하더니 너무도 실감케 하는 장면이다. 이런 현상이 어디 학교뿐이겠는가마는 ‘스쿨 블루’를 직접 목도하고 보니 생각이 달라진다. 이처럼 가라앉은 아이들의 기분을 살려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사회자와 출연진의 모습에서 공연을 뛰어넘는 따뜻한 마음을 느꼈다. 무대에만 있지 않고 학생 옆으로 찾아가 무릎을 꿇고서 눈을 맞추며 노래하고 연주하는 모습은 그 어느 공연에서도 쉽게 보지 못할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나무가 성장하면서 극심한 가뭄이나 혹한을 겪으면 그 당시의 고통이 나이테에 그대로 남게 된다고 한다. 제대로 수분을 섭취하지 못하거나 심하게 혹한을 견디다 보면 그리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리라. 청소년기에 아무 구김살 없이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자유롭게 만끽하며 성장해도 어려운 세상이다. 학교에서 교실에서 친구를 알고 배우며 관계를 가꾸는 능력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실력인데 지금은 자꾸만 개인의 영역으로 움츠러들게 하고 있으니 이러다가 차갑고 메마른 가슴으로 고립과 단절에 익숙해지지나 않을까 크게 걱정이 앞선다.
사람에게 반복되는 일은 습관이 되고 습관이 굳어지면 성격이 바뀔 수도 있다는 말이 있다. 틀림없이 맞는 말이다. 나아가 ‘성격이 운명’이라 했으니 이런 부정적인 일상이 반복되다 보면 나쁜 결과로 이어지지나 않을지….
‘누릴 수 있는 것만을/ 누리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누릴 수 없는 것들을/ 벅차게 하신 이여 / 그냥 빈 가지로 있겠습니다/ 함께 설레던 잎들 다 떨구고/ 바람은 차가움에 겨워/ 가지와 가지 사이를 오가며/ 울어 댑니다’(이근택 ‘겨울 은행나무’)
마치 추위에 떨고 있는 겨울 은행나무가 코로나19에 위축된 우리 아이들의 썰렁해진 모습 같아서 거리의 가로수 하나에도 눈길이 머문다.
앞으로 코로나19가 극복되더라도 우리 아이들의 마음에 남아 있는 심리적 우울감을 훌훌 털어내는 일이 또 하나의 큰 숙제로 남는다.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면서 이전의 밝은 표정을 다시 볼 수 있도록 물리적 방역 못지않게 심리적 방역 또한 절실하게 신경 써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반응은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띄엄띄엄 떨어져 앉은 탓도 있겠지만 표정이 굳어 있다. 작년 축제 때 모습을 보더라도 이럴 아이들이 아닌데 말이다. 코로나 블루라고 하더니 너무도 실감케 하는 장면이다. 이런 현상이 어디 학교뿐이겠는가마는 ‘스쿨 블루’를 직접 목도하고 보니 생각이 달라진다. 이처럼 가라앉은 아이들의 기분을 살려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사회자와 출연진의 모습에서 공연을 뛰어넘는 따뜻한 마음을 느꼈다. 무대에만 있지 않고 학생 옆으로 찾아가 무릎을 꿇고서 눈을 맞추며 노래하고 연주하는 모습은 그 어느 공연에서도 쉽게 보지 못할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나무가 성장하면서 극심한 가뭄이나 혹한을 겪으면 그 당시의 고통이 나이테에 그대로 남게 된다고 한다. 제대로 수분을 섭취하지 못하거나 심하게 혹한을 견디다 보면 그리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리라. 청소년기에 아무 구김살 없이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자유롭게 만끽하며 성장해도 어려운 세상이다. 학교에서 교실에서 친구를 알고 배우며 관계를 가꾸는 능력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실력인데 지금은 자꾸만 개인의 영역으로 움츠러들게 하고 있으니 이러다가 차갑고 메마른 가슴으로 고립과 단절에 익숙해지지나 않을까 크게 걱정이 앞선다.
사람에게 반복되는 일은 습관이 되고 습관이 굳어지면 성격이 바뀔 수도 있다는 말이 있다. 틀림없이 맞는 말이다. 나아가 ‘성격이 운명’이라 했으니 이런 부정적인 일상이 반복되다 보면 나쁜 결과로 이어지지나 않을지….
‘누릴 수 있는 것만을/ 누리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누릴 수 없는 것들을/ 벅차게 하신 이여 / 그냥 빈 가지로 있겠습니다/ 함께 설레던 잎들 다 떨구고/ 바람은 차가움에 겨워/ 가지와 가지 사이를 오가며/ 울어 댑니다’(이근택 ‘겨울 은행나무’)
마치 추위에 떨고 있는 겨울 은행나무가 코로나19에 위축된 우리 아이들의 썰렁해진 모습 같아서 거리의 가로수 하나에도 눈길이 머문다.
앞으로 코로나19가 극복되더라도 우리 아이들의 마음에 남아 있는 심리적 우울감을 훌훌 털어내는 일이 또 하나의 큰 숙제로 남는다.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면서 이전의 밝은 표정을 다시 볼 수 있도록 물리적 방역 못지않게 심리적 방역 또한 절실하게 신경 써야 할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