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동백
2020년 12월 15일(화) 06:00
겨울에 맞춰 꽃을 피우는 나무들이 있다. 김훈 작가는 ‘꽃은 바로 식물의 생식기’라고 했다. 꽃이 피는 것은 2세를 남기기 위해 씨앗을 맺는 필수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수정을 도와줄 벌이 없는 데다 생장도 어려운 겨울은 종족 보존에 매우 불리한 계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식물은 굳이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개화한다. 수만 년에 달하는 장구한 식물의 진화 과정에서 그런 뜻밖의 선택을 한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동백나무도 겨울에 피는 꽃인데, 동백과 닮은꼴인 산다화(山茶花)가 요즘 눈길을 끈다. 꽃이 동백보다 작아 ‘애기동백’이라고도 불린다. 얼마 전 보성군 득량면 오봉리 초암마을에 자리한 초암정원에서 산다화를 만났다. 청람(靑藍) 김재기(82) 어르신이 60여 년간 가꿔 온 이곳은 지난 2017년 전남도 제3호 민간정원으로 지정됐다. 입구에 들어서면 붉은 꽃을 피운 산다화가 먼저 방문객을 반긴다.

고택 마당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좀 더 다채로운 수십 그루의 산다화를 만날 수 있다. 붉고 하얗고, 나무마다 꽃 색깔이 다른데, 모두 6종이다. 한쪽에서는 꽃들이 만개했는데 다른 한쪽에는 꽃망울이 맺혀 있다. 나무 아래는 떨어진 꽃잎들이 붉은 융단을 이루고 있다. 잔디밭에 앉아 내려다보는 산다화 꽃 풍경은 득량만 바다 빛깔과 잘 어우러져 ‘코로나 블루’ 따위는 일시에 날려 버리는 듯하다.

신안군 압해읍 송공리 ‘천사섬 분재 공원’ 역시 애기동백으로 유명하다. 이곳 분재공원 내 5㏊의 부지에는 1만 7000여 그루의 애기동백 나무가 식재돼 있다. 신안군은 매년 이곳에서 개화기에 맞춰 축제를 개최해 왔지만,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섬 겨울꽃 랜선 축제’로 대체했다고 한다. 홈페이지(섬겨울꽃애기동백축제.com)를 통해 눈 오는 날 애기동백 숲길 풍경 사진과 동백을 테마로 한 회화전, 지난해 유튜브 공모전 수상작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애기동백 꽃은 우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 주는 듯하다. 눈 오는 날에도 꽃 피우는 자신처럼 견디라고, 이겨 내라고…. 겨울 꽃을 다시금 보며 명상에 젖는다.

/송기동 문화2부장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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