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강희 김대중·만델라 평화공원 건립준비위원회 학술위원장] 김대중 대통령의 인권·평화 정신을 추억하며
2020년 12월 13일(일) 23:10
누구나 가슴이 벅차오를 때는 자신의 의사를 액면 그대로 전달하기에 버겁다. 김대중 대통령을 추억하고 노벨 평화상 수상 20주년을 회고하면서 맞닥뜨리는 감정이 딱 그렇다. 이럴 때는 당시의 분위기를 팩트에 차분히 싣는 게 최적의 방법이리라.

노벨 평화상은 다른 부문과 달리 스웨덴이 아닌 노르웨이 국회가 선출한 5인 위원회가 선정해 노벨이 세상을 떠난 날을 기려 매년 12월 10일에 시상한다. 군나르 베르게 노벨평화상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000년 평화상 수여 당시 노르웨이 시인 롤드크밤의 ‘마지막 한 방울’이라는 시구를 인용하며 수상 배경을 설명했다.

“옛날 옛적에 물 두 방울이 있었다네 / 하나는 첫 방울이고 / 다른 것은 마지막 방울 / 첫 방울은 가장 용감했네 / 나는 마지막 방울이 되도록 꿈꿀 수 있었네 / 만사를 뛰어넘어 우리가 우리의 / 자유를 되찾는 그 방울이라네 / 그렇다면 누가 첫 방울이기를 바라겠는가?”

장문의 수상 배경을 요약하여 본다. 전반부는 수상 이유와 배경이고, 후반부는 김대중과 유사한 세계적인 평화·인권 운동가들을 거명한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김대중의 성과들을 적시하고 있다.

“햇볕 정책은 고난과 박해에서 나온 산물이다. 즉 5년 반의 수감 생활, 3년여의 망명 생활, 6년 반의 자택 연금, 다섯 번의 죽을 고비, 네 번의 국회의원 낙선, 세 번의 대통령 선거 낙선, 의문의 교통사고, 납치와 내란 혐의로 인한 사형 선고를 받고도 대권 도전 26년 만에 수평적인 정권 교체로 국민의 정부를 탄생시켰다.

김대중의 용기 있는 행동은 남아프리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세계 인권 운동의 상징적인 존재인 넬슨 만델라(1993년 수상), 소련의 핵물리학자이자 인권운동가인 안드레이 사하로프(1975년 수상), 미얀마의 독재에 항거해 영웅적인 투쟁을 한 아웅산 수지(1991년 수상), 동티모르의 인권을 지킨 호세 라모스 오르타(1996년 수상), 동방 정책을 통해 동서독 통합을 이끈 빌리 브란트(1971년 수상) 등과 궤를 같이한다.

그는 용서할 수 없는 것까지 용서하여 반(反)보복 정치를 실천했다. 구체적으로 보안법, 노조 결성권, 남북 햇볕 정책, 법적·제도적 여권 보호 등 인권 정책을 활성화했다. 요컨대 분단과 적대에 종지부를 찍고 남북 간 자주적 통일 노력이라는 민족사의 새 전기를 6·15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20주년을 즈음해 대한민국이 그를 다시 소환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가졌던 철학과 이념, 정신과 사상, 가치와 신념이 똑바르고, 남다르고, 우리 모두를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금껏 그의 족적을 기리기보다는 외면하고 방관해온 게 사실이다. 그를 기리는 다양한 시민 활동 및 이에 대한 지원 역시 인색한 측면이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들어 광주시는 시민 평화제를, 전남도는 김대중·만델라 평화사업으로 김대중 인권·평화 정신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만시지탄이 있지만 지극히 바람직한 일이다. ‘김대중 인권·평화의 날’을 제정하고, 김대중 아카데미를 만들고, 국제적 규모의 김대중·만델라 평화 사업의 대역사를 펼쳐나가야 한다.

정치가 진정으로 국민에 기여하려면 정치 지망생의 시금석, 현실 정치 혁신의 이정표가 제시되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살고 국민이 공영할 수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에 코로나19까지 겹쳐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때 우리는 사표로 내세울 만한 지도자를 추억하게 된다. 수다한 집권 위정자들이 초라한 성적표를 남겼고 그 대가는 국민이 치렀다. 지금, 다시, 김대중 리더십이 절실히 요청되는 이유다. 살아가는 자의 미덕과 한계는 유한한 인생 속에서 역사를 믿는 도리밖에 없다. 일찍이 DJ는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고 설파하지 않았던가.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