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변별력
2020년 12월 11일(금) 04:00
“권력 남용은 불가피한 것인가/ 종교적 믿음을 갖는 것은 이성을 포기한다는 의미인가” “의무를 인정하는 것은 자유를 포기하는 것인가/ 문화적 다양성이 인류의 동질성을 방해하는가”

프랑스의 대입 시험인 ‘바칼로레아’ 2013년도와 2019년도 철학 시험 문제 중 일부이다. 이처럼 프랑스의 대입 철학 시험에서는 깊은 사고가 필요한 논술형 문제가 출제된다. 이 시험은 난해하기로도 유명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매년 시험 직후 주요 신문·방송이 네 시간가량 진행되는 첫날 철학시험에 나온 주제에 대해 실시간 보도를 한다는 사실이다. 국민도 출제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등 프랑스가 철학의 나라임을 상징하는 문화이기도 하다.

바칼로레아의 목적은 학생의 우열을 가리거나 인재를 뽑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고교 시절부터 생각하는 능력을 갖추도록 해 누구나 인재가 될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다. 이 때문에 바칼로레아의 합격률은 80%에 달할 정도이다. 이 시험에 합격한 고교 졸업생은 누구나 등록금 부담 없이 국립대에 진학할 수 있다. 200년 역사에, 제2차 세계대전 속에서도 치러졌던 바칼로레아가 올해는 ‘코로나19’로 전격 취소되고 내신 성적으로 대체됐다고 한다.

우리의 수학능력시험을 바칼로레아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 수능에는 창의성과 생각하는 힘을 측정하기는커녕 ‘너무 쉽다’ 못해 수험생이나 교사까지도 짜증 나게 하는 무성의한 시험 문제들이 출제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이중 한국사 20번 문제는 현대사와 관련된 지문과 연관성 있는 답을 찾는 문제인데, 정답을 제외한 오답 문항이 모두 고려·조선 시대 사항으로 중학생도 맞출 수 있는 수준이어서 ‘보너스 문제’라는 비난까지 받았다.

한국사는 대입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수험생이라면 누구나 중·고교에서 6년간 배운 과목이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맞힐 수 있는 정도의 문제라면 수험생과 교사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며, 공교육 취지에도 어긋난다. 교육부는 앞으로 최소한의 변별력을 갖춘 문제들이 출제되도록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채희종 사회부장 cha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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