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혁신이 농업에 주는 빛과 그림자
2020년 12월 09일(수) 23:30

황범수 농협중앙회 안성교육원 교수

현대 경영학을 창시한 피터 드러커는 ‘위대한 혁신’이라는 저서에서 “기존 사업을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지속하는 것은 앉아서 재난을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디지털 혁신이 빠르게 진행되는 4차 산업혁명의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스마트 팜이 농업의 대세를 이루면서 정부는 스마트 팜 혁신 밸리로 선정된 거점 지역을 중심으로 스마트 농업을 확산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농가 인구 감소 및 농업인의 고령화, 농촌 지역 과소화 같은 구조적 문제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농업과 식품 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스마트 농업 확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또 노지 스마트 농업 등 농업 빅 데이터 센터를 조성하여 과학 영농의 기초를 다지고, 스마트 팜 생태계 조성에 중점을 둘 방침이라고 한다. 농촌의 노동력 감소 해결과 농가 소득 증대 및 기술 향상을 스마트 농업을 통해 주도하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농가 경제 조사 결과를 보면 2019년 농가의 평균 소득은 4118만 원으로 전년 대비 89만 원(2.1%) 감소했고, 평균 가계 지출은 3534만 원으로 전년 대비 151만 원(4.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농업 소득은 1026만 원으로 전년 대비 132만 원(20.6%)이 줄었다. 특히 농가 인구는 46년째 감소세이며, 급속한 고령화로 인하여 65세 이상 비율이 46.6%로 전체 농가 인구의 절반에 육박하는 등 고령화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직접 키운 농축산물을 판매한 금액이 1000만 원에도 못 미치는 영세 농가가 전체의 65%에 달하고, 70%는 경지 규모 1ha 이하의 소규모 농가이다. 이런 현실에서 스마트 농업 정책들이 과연 소작농과 고령농들에게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19년 농가 경제 실태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농가 소득 5분위 배율이 10.9배로 조사되었다. 이는 소득 하위 20%(1분위) 농가보다 상위 20%(5분위) 농가의 소득이 11배 가까이 높다는 뜻이다. 이처럼 농가 간 소득 양극화가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부농은 더욱 부농이 되고, 빈농은 더욱 빈농이 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저수입 농가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대책 마련이 스마트 농업 경쟁력 강화 정책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선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농촌의 디지털화·스마트화는 농민들과 농촌 주민들의 삶의 개선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떤 이에게는 새로운 꿈이 되는 반면 어떤 이에게는 무거운 짐이 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 속에서 농업의 식량 안보 문제는 더욱 중요해 지고 있다. 2009년 56.2%였던 국내 식량 자급률은 2018년 46.7%로 9.5% 하락했고, 우리나라 연평균 국내 곡물 생산량은 450만 톤 수준에 불과하여 매년 1600만 톤을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곡물 자급률은 21.7%로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 식량 수출국들은 곡물 등 주요 먹거리의 수출을 금지하기도 했다. 세계 쌀 수출 3위 국가인 베트남은 지난 3월에 쌀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가 재개했으며, 밀 수출 1위 국가인 러시아 역시 지난 3월에 곡물 수출을 일시 중지하기도 했다. 당장이야 큰 문제가 없겠지만 이런 현상이 지속되고 기후 변화, 자연재해 등이 발생하게 되면 식량 수급 취약 국가들은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른바 식량 민족주의로 대공황보다 대봉쇄를 두려워해야 하는 상황을 우리는 직접 경험하게 되었다.

농업은 국가의 필수 산업이자 생명 산업으로 국가 운영에서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으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더더욱 농업의 소중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에 농가의 소득 감소와 농촌의 고령화 등의 위기 속에서 반도체나 자동차의 수출이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식량이 우리를 먹여 살린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농업 분야의 디지털 혁신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고찰이 절실히 필요하다. ‘미래는 언제나 너무 빨리, 잘못된 순서로 온다’는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의 말을 되새겨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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