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공후사
2020년 12월 02일(수) 05:00
중국 조(趙)나라에는 염파와 인상여라는 두 재상이 있었다. 염파는 야전에서 큰 공을 세운 장군인 데 비해 인상여는 환관의 식객으로 있었을 정도로 출신이 미천했지만 외교의 달인으로 성공한 문신이다.

어느 날 진(秦)나라 소양왕이 조나라 혜문왕을 초청했다. 진나라의 위세에 겁을 먹은 혜문왕이 가기를 꺼리자 염파는 ‘가지 않으면 조나라가 약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라며 초청에 응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인상여를 수행원으로 보냈다. 연회를 마련한 진왕은 조왕에게 비파를 연주하도록 하고 이를 사관에게 기록하게 하는 치욕을 주었다. 그러자 인상여는 목숨을 걸고 진왕에게 청해 ‘분부’라는 악기를 두드리게하고 이를 똑같이 기록에 남겨 앙갚음했다.

인상여의 기지로 수모를 겪지 않고 귀국한 조왕은 인상여에게 염파의 직위보다 더 높은 상대부라는 관직을 하사했다. 이에 “세 치 혓바닥 한번 놀린 것뿐인데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자기보다 인상여의 벼슬이 높다”며 불만을 품은 염파는 언젠가 복수할 기회만 노렸다.

인상여는 염파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늘 피해 다녔다. 이를 본 그의 식객들이 “비겁하다”며 떠나려고 하자 인상여는 그제야 속마음을 내비쳤다. “막강한 진왕도 욕보인 내가 염 장군을 두려워할 이유가 무엇인가. 나와 염 장군이 있기에 진나라가 쳐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염파를 피하는 것은 나라의 급한 일이 먼저이고 사사로운 감정은 나중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선공후사’(先公後私)란 말은 여기에서 비롯됐다.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이 말을 꺼냈다. 공직자는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을 받드는 선공후사의 자세로 임해 달라고 당부한 것이다.

공직자라면 갖춰야 할 덕목인 선공후사의 정신을 어기고 있는 이 누구인가. 집단의 이익이나 자신의 공명심을 위해 국민을 볼모로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이는 또 누구인가. 국민들은 알고 있다. 선공후사의 정신을 실천해야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장필수 제2사회부장 bung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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