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테스 형!
2020년 12월 01일(화) 07:00

송 재 소 성균관대 명예교수

2020년 올해 최대의 화제는 단연 나훈아이다. 지난 9월 23일 방송된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콘서트에서 그는 2시간 30분 동안 약 30곡의 노래를 불러 국민들을 열광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날 시청률은 40%라고도 하고 29%라고도 하는데, 29%라고만 해도 놀라운 시청률이다. 사람들은 왜 이토록 그의 노래에 열광하는 것일까?

그가 부른 노래 중에서 가장 많은 갈채를 받은 것은 ‘테스 형’이다. 그는 직접 가사를 쓰고 작곡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이른바 ‘싱어송 라이터’로 알려져 있다. 이 노래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데에는 그의 가창력에 기인한 바가 크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가 쓴 노랫말도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로 시작되는 이 노래의 주제는 ‘아픔’이다. 이어지는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 형! 소크라테스 형/ 사랑은 또 왜 이래?”에서 이 아픔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의 아픔은 세상에 대한 아픔이고 사랑에 대한 아픔이다. 그리고 마지막의 “아, 테스 형! 소크라테스 형/ 세월은 또 왜 저래?/ 먼저 가 본 저세상 어떤 가요? 테스 형/ 가 보니까 천국은 있던 가요? 테스 형”에서 이 아픔은 세월에 대한 아픔까지 품는다.

그는 세상이 아프고 사랑이 아프고 세월이 아픈 이유를 ‘테스 형’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흔히 대중가요가 개인적인 정서를 노래하는 데 그치고 마는데 나훈아는 개인의 정서를 넘어서 어지러운 세상, 덧없는 인생에 대한 깊은 고뇌를 노랫말 속에 담았다. 70세가 넘은 노인에게서 풍기는 연륜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을 불렀을 때보다 훨씬 성숙하고 무르익은 나훈아를 우리는 만나게 된다.

붓글씨도 쓰고 유화(油畵)도 그린다는 그는 확실히 예술가적 재능을 지니고 있다. ‘테스 형’의 가사는 잘 짜인 한 편의 시와 같다. 아픔-세상-사랑-세월로 이어지는 가사의 맥락도 그렇거니와 “그저 와 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라든가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 형”과 같은 구절 또한 반짝이는 훌륭한 시구(詩句)라 할 수 있다. ‘아, 테스 형!’이란 반복구(反復句)에서도 그의 시적 재능이 드러나 있다. ‘아, 공자 형!’ ‘아, 퇴계 형!’이라 했으면 얼마나 어색했을까?

우리가 그의 노래에 열광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가수로서의 실력 때문일 것이지만, 그 이면을 보면 자기만의 삶의 자세와 철저한 장인정신이 뒷받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1996년 일본 오사카 공연 말미에서 ‘쾌지나칭칭나네’ 후렴구 앞에 ‘독도는 우리 땅. 누가 뭐래도 우리 땅’이라는 노랫말을 넣어서 열창했다고 한다. 한일 관계가 날카로웠던 때 일본 땅에서 이렇게 노래한다는 것은 여간한 배짱과 신념과 용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당연히 극우 단체로부터 협박 전화를 받았지만 ‘죽이려면 죽여 봐라’며 버텼다고 한다.

그는 정부가 주는 훈장을 사양하기도 했는데 그 이유가 이랬다. “세월의 무게도 무겁지만 가수라는 무게도 엄청나게 무겁습니다. 그런데 그 훈장의 무게까지 제가 어떻게 견딥니까?” 훈장을 사양한 것도 예사롭지 않은 일이지만 ‘가수라는 무게’를 엄청나게 무겁게 여겼다는 말에서 노래에 대한 그의 애정 또한 예사롭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생일잔치에서 노래를 불러 달라는 요청을 거절한 것, 1992년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의 국회의원 공천 제의를 거절한 것, 2020년 2월 대구의 코로나 방역을 위해 3억 원을 기부한 것 등 일련의 사건만 봐도 그가 걸어 온 삶의 궤적이 어떠했는지 알 만하다.

더욱이 이번 KBS 공연에 출연료를 받지 않았다고 하니 그가 정말 예사롭지 않은 인물인 것만은 분명하다. 70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한 가창력을 자랑하는, 노래하는 시인 나훈아 씨의 건승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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