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격을 높이는 자 누구인가?
2020년 11월 11일(수) 05:30

송 민 석 수필가·전 여천고 교장

오래전 일이다. 영국에서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귀족 제도의 존폐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폐지 여론을 기대했으나 압도적인 다수가 귀족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나온 것이다. 조사 당국은 머쓱해졌다. 근대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영국인들이 이처럼 봉건적인 귀족 제도에 애착을 갖는 것은 귀족들이 앞장서 자기희생으로써 사회 공동체를 지켜온 역사를 조상 대대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프랑스어로 ‘귀족의 의무’를 뜻한다. 일반적으로는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해야 한다는 의미다. 로마 제국 2천 년의 역사를 가능하게 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바로 로마인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였다. 로마의 귀족들은 사회적 기부·헌납·봉사 등의 일반적인 전통뿐만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면 즉각적으로 참전하는 것을 자신들의 의무이자 명예로 여겼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10년 전 천안함 피격 사건 당시 비상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청와대 지하 벙커에 모인 대통령, 국정원장, 감사원장, 국무총리, 여당 대표 등 모두 병역 면제자들이었다. 선진국 사회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부럽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 사회 지도층의 책임 불감증 탓일 것이다.

많은 특권을 갖고서도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서 지도층을 자처하는 사람이 많은 우리 사회가 아닌가 한다. 나라의 최고위 지도층 인사들까지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로 병역 의무를 치르지 않고도 위정자의 자리에 오르는 나라에 기강이 제대로 설 수 있겠는가.

우리 정치는 대화가 실종되고 대립이 난무하는 후진적 정치 문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어령 교수는 국격을 높이려면 “우선은 우리 안의 ‘천격(賤格)’을 걷어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천격의 대표적인 것이 천박하고 저속한 말이다. 작은 허물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싸잡아 거친 말로 공격하는 건 인격의 천박함을 드러낼 뿐이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의 산물이다. 코로나 이후 일상의 변화로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품격 있는 정치가 아쉬운 요즘이다.

어디 정치인뿐인가. 사회에 대한 책임보다 부와 권력을 물려주고 더 많이 갖기 위한 재벌들의 병폐도 개혁할 때가 되었다. 카네기처럼 자신의 부를 사회에 환원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이 번 돈에 대한 세금은 정당하게 내는 게 부자의 도리가 아닌가. 세계 제일의 부자로 가장 많은 기부금을 낸 빌 게이츠는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여 세계인에게 감명을 준 바 있다.

부자라면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세태도 문제지만 절세(節稅)라는 명분으로 탈세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일부 재벌들의 의식도 문제다. 우리 사회에 부자가 특별 관리 대상이 되는 것은 경주 최부잣집이나 유한양행을 창업한 유일환 박사와 같은 청부(淸富)가 드물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에 고급 아파트를 가진 사람 중에서도 “집값이 폭락하는 한이 있더라도 국토의 균형 발전을 위해 수도는 이전해야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우리 보수에는 그런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 학교는 자신이 출세를 하거나 자신만이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원하지 않는다. 주변을 위하고 사회나 나라가 어려울 때 제일 먼저 달려가 선두에 설 줄 아는 사람을 원한다.” 보리스 존슨 현 총리를 비롯한 수많은 정관계 지도자를 배출한 영국 대표 명문 고등학교인 ‘이튼 스쿨’ 학교장이 어느 해 졸업식에서 한 송별사 내용이다.

세월호 사건 때 팽목항으로 달려간 하루 평균 2000여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은 누구보다 귀한 행동으로 국격을 높인 분들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단지 일부 사회 지도층이나 재벌에게만 해당하는 용어가 아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고 배려하는 고귀한 정신은 개개인의 사소한 행동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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