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그해에 쓴 광주 고교생들의 글을 보며
2020년 11월 04일(수) 00:00
“5월 20일에는 도청으로 친구와 가는 도중에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다. 무수히 얻어맞아 피멍이 들어 죽어 있는 시체를 달구지에 싣고 몰고 다니는 인파를 본 것이다. 얼마나 맞았으면 그렇게 됐을까.” 5·18민주화운동 직후 고교생들이 5·18에 대해 겪고 느낀 바를 기록한 ‘단체 작문’이 39년 만에 공개됐다. 이들이 글을 쓴 시점은 신군부의 유혈 진압으로 5·18이 막을 내린 지 10개월 뒤다. 따라서 이 작문집은 5·18과 관련해 가장 빠른 시기에 이뤄진 집단 증언인 셈이다.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은 어제 열린 학술대회에서 40년 전 5·18을 경험했던 광주 석산고 1학년생 186명이 쓴 ‘5·18 작문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작문집은 석산고 국어교사 이상윤 씨가 1981년 2월 말께 1학년 학생들에게 내준 숙제였다. 작문집은 같은 해 5월 동료 교사인 박형민 씨에게 전달됐고 이후 1987년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 기증된 뒤, 지난 7월 5·18기록관에 기탁됐다.

“내 형제 내 이웃 내 친구가 지금 현세계에 존재하지 않고 있는데. 언제 어디서 모이자고 약속하지 않았는데 나가 보면 모두 한자리인 걸 보면 광주 시민의 국가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구나 하는 걸 느낀다.”(최병문) “이 사건을 굳이 ‘사태’라기보다는 ‘의거’라고 칭하고 싶다. 정부에서는 이를 일부 불순분자의 책동이라고 했으나 이는 믿을 수 없는 무책임한 말이다.”(서충렬) “광주사태는 결과적으로 하나의 아픔으로 끝을 맺었지만 맨 처음 시도의 의의를 생각해 볼 때 정당한 민주적 권리의 주장이라고 생각한다.”(서왕진)

많은 이들이 5월의 진실에 눈을 감을 때, 진실을 말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던 때, 아직 어린 그들은 생각하고 보고 느낀 바를 가감 없이 그대로 써 내려갔다. 당시 고교생들의 편지를 읽노라면 다시 그날로 돌아간 듯해 숙연해진다. 어린 학생들이 숨을 죽여 가며 저마다 목격한 진실을 꾹꾹 눌러썼을 모습을 생각하면 또 가슴이 먹먹해진다.

실시간 핫뉴스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