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세유와 광화문 그리고 공익을 위한 독재
2020년 11월 03일(화) 07:30 가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0월 14일 저녁 8시부터 통행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하루 수만 명의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발하여 사람들이 마르세유 광장에 모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추석 연휴를 앞두고 광화문 집회를 원천 봉쇄한다고 발표했다. 명절 대이동 기간의 감염 확산을 우려한 것이다. 이에 반발하여 사람들이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마르세유 광장에도, 광화문 광장에도 사람들이 모였다. 프랑스에서는 ‘보건 독재’를 규탄하고, 서울에서는 ‘정권 타도’를 외친다. 둘 다 민주주의 위기를 외치는 것은 같지만, 프랑스는 코로나 위기 극복의 방법을 놓고 격돌하고, 광화문에서는 정권 퇴진을 놓고 격돌한다.
마르세유에서는 독자적인 과학위원회를 만들어 정부의 코로나 정책의 문제점과 통계를 비판하며 독자적인 정책을 제안하고, 광화문에서는 종교 지도자들이 코로나균 살포 등 괴기스러운 주장을 한다. 저쪽 의회에서는 코로나의 예외적 상황이 보건 독재로 갈 것을 우려하고, 이쪽 의회에서는 코로나의 성공적 통제가 정권 연장으로 갈 것을 두려워 한다. 한쪽 의사들은 감염 검사의 적정성을 비판하고, 이쪽 의사들은 권익을 위해 용감하게 파업을 감행한다.
정부를 살펴보자. 저쪽은 확진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고, 이쪽은 통제 가능 영역에 묶어 놓고 있다. 저쪽은 보건과 인권에 대한 논쟁으로 날이 새고, 이쪽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공익적 통제를 위해 경찰을 투입한다. 저쪽의 식자들은 다원성과 민주주의가 코로나를 물리칠 것이라고 하고, 이쪽의 행정가들은 공익을 위해 공권력을 투입한다. 저쪽에서는 이쪽을 ‘통제 국가’라고 하고, 이쪽에서는 저쪽을 향해 ‘살찐 민주주의’라고 한다. 이쪽에서는 단 한 명의 국민도 포기하지 않는다고 하고, 저쪽에서는 집단 면역을 실험한다.
이쪽에서는 보건과 경제의 균형을 맞추는 문제라고 하고, 저쪽에서는 중국식 통제 국가라고 한다. 저쪽에서는 어떠한 이유로든 통제 자체를 반대하여 목숨을 걸고 다양성의 가치를 옹호하고, 이쪽에서는 지금이야 말로 민주주의 본질을 잘 구현하여, 소위 ‘민주적 통제’가 필요한 시기라고 한다. 교육에 있어서도 이쪽에서는 등교하지 못하는 날에는 원격 수업을 병행하여, 탄력적으로 운영하지만, 저들은 일제히 학교를 폐쇄한다.
확진자는 폭발하고 있는대 집회 시위와 테러로 연일 들끓고 있는 유럽의 모습은 쇠락한 문명의 끝자락을 보고 있는 것도 같고, 정쟁으로 날을 지새우는 여의도의 분내를 묵묵히 인내하며,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피부가 되어 버린 마스크 너머의 처연한 눈망울은 평화로운 시절 다가올 심판의 날을 예약한다.
공익을 위해 일정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왠지 음흉한 그림자가 비친다. 국가 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분단 국가라는 이유로,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했던 과거 독재 권력들의 그림자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요한 차이가 있다. 자기 권력을 위해 국가 발전이라는 정치적 선동을 일삼던 파시즘 세력과 오직 공익을 위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예외를 통제하는 체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거기에는 위정자들이 있고, 여기에는 선량한 보건 당국자들이 있다. 거기에는 우민화와 감시가 있었고, 여기에는 위민 정신과 투명성이 있다.
아시아적 생산 양식의 최정점에 있는 한국은 지금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보건과 경제, 보건과 교육, 보건과 민주주의, 보건과 문화예술, 보건과 안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다. 말이 쉽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확률이 매우 높은 단 한가지 전략이 있다. 유일한 방법은 한 명도 열외 없이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손에 손잡고 토끼몰이를 하는 것이다. 옷에 흙탕물이 묻고, 힘없는 자는 넘어지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함께 일으켜 세우며 잡은 토끼이기에 모두의 것이 아니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추석 연휴를 앞두고 광화문 집회를 원천 봉쇄한다고 발표했다. 명절 대이동 기간의 감염 확산을 우려한 것이다. 이에 반발하여 사람들이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마르세유에서는 독자적인 과학위원회를 만들어 정부의 코로나 정책의 문제점과 통계를 비판하며 독자적인 정책을 제안하고, 광화문에서는 종교 지도자들이 코로나균 살포 등 괴기스러운 주장을 한다. 저쪽 의회에서는 코로나의 예외적 상황이 보건 독재로 갈 것을 우려하고, 이쪽 의회에서는 코로나의 성공적 통제가 정권 연장으로 갈 것을 두려워 한다. 한쪽 의사들은 감염 검사의 적정성을 비판하고, 이쪽 의사들은 권익을 위해 용감하게 파업을 감행한다.
확진자는 폭발하고 있는대 집회 시위와 테러로 연일 들끓고 있는 유럽의 모습은 쇠락한 문명의 끝자락을 보고 있는 것도 같고, 정쟁으로 날을 지새우는 여의도의 분내를 묵묵히 인내하며,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피부가 되어 버린 마스크 너머의 처연한 눈망울은 평화로운 시절 다가올 심판의 날을 예약한다.
공익을 위해 일정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왠지 음흉한 그림자가 비친다. 국가 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분단 국가라는 이유로,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했던 과거 독재 권력들의 그림자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요한 차이가 있다. 자기 권력을 위해 국가 발전이라는 정치적 선동을 일삼던 파시즘 세력과 오직 공익을 위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예외를 통제하는 체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거기에는 위정자들이 있고, 여기에는 선량한 보건 당국자들이 있다. 거기에는 우민화와 감시가 있었고, 여기에는 위민 정신과 투명성이 있다.
아시아적 생산 양식의 최정점에 있는 한국은 지금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보건과 경제, 보건과 교육, 보건과 민주주의, 보건과 문화예술, 보건과 안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다. 말이 쉽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확률이 매우 높은 단 한가지 전략이 있다. 유일한 방법은 한 명도 열외 없이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손에 손잡고 토끼몰이를 하는 것이다. 옷에 흙탕물이 묻고, 힘없는 자는 넘어지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함께 일으켜 세우며 잡은 토끼이기에 모두의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