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2040] 코로나 팬데믹과 성숙한 민주주의
2020년 11월 02일(월) 06:00

오 태 화 위민연구원 운영위원·대학생

후대의 학자들이 21세기를 정의한다면, 그들의 기준에는 언제나 ‘코로나 팬데믹’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코로나는 우리의 많은 것을 빼앗았고 변화시켰다. 그렇기에 세계는 더욱 시끄럽다. 곳곳에서 개인의 자유와 정부의 방역 지침이 서로 충돌하며 사회적 갈등 상황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세계는 혐오주의에 빠졌고, 로마 대화재에서 그랬듯 특정 종교나 특정 집단에 모든 분노를 집중시켜 두려움을 분노로 치환하려는 집단주의가 비추어지기도 한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시대를 관통하는 새로운 힘,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최근 프랑스, 독일, 미국, 그리고 체코 프라하 등에서 개인의 자유를 외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정부의 방역 지침으로 인해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는 현실에 분개한 이들이 거리에 나선 결과이다. 이들은 정부가 개인의 마스크 쓰지 않을 자유를 침해하고 있으며, 심지어 야간 통행에 대해서까지 통제하는 독재적 방역을 실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일부 세력의 주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모습에 우리들의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지는 것은 왜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질문을 던져보자.

먼저 개인의 자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 어떤 가치보다도 소중하며, 절대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답을 말하자면, 아니다. 개인의 자유는 소중한 가치라는 점에서 누구나 동의할 수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 생존의 확신을 전제로 하여 타인의 생존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유효하다. 생존이 없는 한 자유도 없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생존은 확실히 불투명하다.

그렇다면 집단과 정부가 방역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볼 수 있는가? 애석하게도 그것 역시 아니다. 정부는 국민에게 일상에 대한 최소한의 침해와 최대한의 보장을 위해 존재해야만 한다. 개인의 권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적극적으로 보장되는 것이 옳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성숙한 민주주의’가 문제의 열쇠로 요구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자유를 위한 투쟁을 계속해왔다. 그리고 그 결과 상당수 국가의 국민들은 충분히 자유를 누리고 있다. 코로나 대유행에도 거리에 나와 자유를 외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충분히 자유를 쟁취해 소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제는 자유를 얻기 위해 싸우고 고민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숙한 민주주의’로의 발전이다. 국민으로서의 주권과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서 한발 더 나아가 쟁취한 결과물을 바르게 사용하는, 한마디로 주인으로서의 행동에 대해 고민하고 배워 나가야 하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자발적 동의와 합의의 과정을 통해 방역 지침과 통제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자발적 동참을 통해 협조하면 된다. 그것이 우리가 주인 된 국가와 공동체를 무너뜨리지 않는 길이며, 동시에 우리의 일상과 생존을 보장할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최근 ‘방역 파시즘’이나 ‘환경 파시즘’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많아졌다. 그러나 그것은 세계 정부들의 강제력 행사가 비민주적이어서도, 그것이 개인의 자유와 충돌하는 지점이어서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생존을 향한 치열한 투쟁에 우리가 스스로 동참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자신만을 주인의 위치에 올려두고 다른 이들의 주인 된 위치를 인정하지 못하는 오만함에서 유래된 것이었다. 우리는 이미 자유를 쟁취해 냈고 자유의 주인이지만, 아직도 자유를 쟁취하고자 투쟁해야 한다는 사고방식만이 우리 곁에 존재하기에 더욱 그렇다.

시대는 변화했다. 이미 우리 스스로가 주인인 지금, 우리는 쟁취한 자유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만 한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자연재해와 전염병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자발적으로 투쟁해야만 한다. 주인 되기 위한 투쟁에서 벗어나 주인 된 투쟁을 계속하자. 되찾기 위한 투쟁에서 벗어나 지키기 위한 투쟁을 계속하자. 우리의 자유는 여전히 우리의 일상과 삶을 지키는 데에 사용될 것이고, 우리는 여전히 주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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